스마트폰 화면에 새벽 3시15분이 찍혀 있다.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오히려 또렷하다. 뒤척이는 사이 창밖이 밝아오고, 무거운 몸으로 하루를 맞는다.
잠드는 데는 별문제가 없는데 이른 새벽 눈이 떠진 뒤 다시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어 잠이 줄었다거나 성격이 예민해서 그렇다고 넘기기 쉽다.
나이가 들수록 밤중에 깨는 일이 잦아지고 기상 시각이 앞당겨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에 계속 잠이 끊기고 아침 피로와 낮 졸림까지 이어진다면 노화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불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원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수면 문제로 진료받는 사람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비기질성 수면장애(F51) 또는 수면장애(G47)로 건강보험 급여 진료를 받은 환자는 130만8383명이었다. 2020년 103만7396명보다 26.1% 늘었다.
이 수치는 조기 각성 환자만 따로 집계한 게 아니다. 불면증을 포함한 여러 수면장애 진료가 섞여 있다. 수면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전반적으로 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새벽에 일찍 깨는 것도 불면 증상
불면증은 밤새 잠들지 못하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잠드는 데 오래 걸리는 입면 장애, 자다가 여러 차례 깨는 수면 유지 장애, 원하는 시각보다 일찍 눈이 떠져 다시 잠들지 못하는 조기 각성도 불면 증상에 포함된다.
새벽 3시냐 5시냐 하는 시각 자체는 진단 기준이 아니다. 밤 9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사람과, 자정에 잠들어 새벽 3시에 깬 뒤 몇 시간을 뒤척이는 사람은 상태가 다르다. 원래 일어나려던 시간보다 일찍 깼는지, 다시 잠들기 어려웠는지, 그래서 낮 생활에 지장이 생겼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한두 번 일찍 깼다고 불면증으로 진단하지도 않는다. 만성 불면장애는 충분히 잘 기회가 있는데도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너무 일찍 깨는 증상이 주 3회 이상 나타나고 3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낮 기능을 떨어뜨릴 때 진단을 검토한다.
김진희 세란병원 신경과 과장은 “새벽 각성은 이른 새벽에 깬 뒤 다시 잠들기 어려운 상태”라며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아침 피로와 낮 졸림, 집중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입면 장애나 여러 번 깨는 중간 각성과 양상이 다르지만 두세 가지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며 “잠자리에 든 시각과 실제 잠든 시각, 중간에 깬 시간과 다시 잠드는 데 걸린 시간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술 마시면 빨리 잠들지만 후반부 수면 흔들려
새벽잠을 깨우는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안과 긴장은 잠을 얕게 만든다. 통증과 야간뇨, 폐경기 증상, 복용 중인 약물도 밤잠을 끊을 수 있다.
우울증에서도 이른 아침 눈이 떠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새벽 각성만으로 우울증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울감과 의욕 저하, 흥미 감소, 식욕 변화가 함께 이어진다면 정신건강 상태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늦은 시간 마신 술과 커피도 영향을 준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빨리 잠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 알코올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수면이 얕아지고 자주 깰 수 있다. 이뇨 작용으로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늘기도 한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오후나 저녁에 마신 커피가 밤까지 영향을 미친다. 잠드는 시간뿐 아니라 잠을 유지하는 과정도 방해할 수 있다. 불규칙한 취침 시간과 교대근무 역시 몸의 수면·각성 리듬을 흔든다.
◆‘새벽 3시 코르티솔’이 원인이라는 근거는 없다
온라인에는 새벽 3~4시에 깨는 이유를 '코르티솔 과다'로 설명하는 글이 흔하다. 코르티솔이 수면·각성 리듬에 관여하는 건 맞지만, 특정 시각에 깨는 것을 코르티솔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코르티솔은 몸이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아침 활동을 준비하도록 돕는 호르몬이다. 밤에는 낮은 수준을 보이다가 기상 전후 높아지는 하루 주기가 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도 코르티솔 분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새벽 3시에 깼다는 사실만으로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불면증이나 우울증, 일주기 리듬 장애, 수면무호흡증은 물론 통증이나 배뇨 문제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깬 사실 기억하지 못하는 수면무호흡증
수면무호흡증도 잠을 잘게 끊는다. 자는 동안 기도가 좁아져 호흡이 멈추거나 얕아지면 수면이 짧게 깨면서 호흡이 다시 이어진다. 이런 일이 밤새 반복되면 깊은 잠을 유지하기 어렵다.
각성 시간이 매우 짧으면 본인은 깬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충분히 잤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침이 개운하지 않고 입이 마르거나 머리가 아프고, 낮에 심하게 졸릴 수 있다. 가족에게 코골이가 심하다거나 자다가 숨이 멎는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김 과장은 “자는 동안 호흡이 반복해 멈추는 수면무호흡증도 잠을 자주 깨우는 원인 중 하나”라며 “증상이 의심되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수면다원검사로 수면무호흡증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면다원검사는 잠자는 동안 뇌파와 호흡, 산소포화도, 심장박동, 몸의 움직임 등을 측정하는 검사다. 새벽에 깬다고 다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보통의 불면증은 수면 습관과 증상, 병력을 토대로 판단한다. 심한 코골이나 옆에서 목격한 무호흡, 자다가 숨이 막혀 깨는 증상, 심한 낮 졸림 등이 있을 때 수면검사가 필요한지 따져본다.
◆깬 시각보다 ‘다시 잠드는 데 걸린 시간’ 기록해야
스트레스가 심했던 날이나 과음한 다음 날 한두 차례 잠이 끊겼다면 생활 습관부터 돌아본다. 매일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고 늦은 시간의 술과 카페인을 줄이는 게 기본이다. 주말에 몰아서 늦잠을 자거나 못 잔 잠을 보충하려고 지나치게 일찍 눕는 행동도 수면 리듬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과 밝은 화면을 오래 보는 습관도 줄인다. 새벽에 깬 뒤 휴대전화로 시각을 반복해 확인하면 ‘몇 시간밖에 못 잔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잠이 더 달아날 수 있다.
한참 동안 잠이 오지 않는다면 침대에 계속 누워 버티지 않는 편이 낫다. 불을 밝게 켜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조명을 낮춘 곳에서 책을 읽는 등 조용한 활동을 하다가 졸릴 때 다시 눕는다.
잠자리에 든 시각과 실제 잠든 시각, 밤에 깬 횟수, 깨어 있던 시간, 최종 기상 시각을 수면일지에 적으면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술과 카페인을 마신 시간, 운동과 낮잠 여부, 아침 피로와 낮 졸림 정도도 함께 기록한다.
생활 습관을 바꿨는데도 증상이 계속되면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만성 불면증은 수면 습관 몇 가지만 고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잠에 대한 불안과 잘못된 수면 행동을 함께 교정하는 불면증 인지행동치료가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김 과장은 “반복되는 새벽 각성과 아침 피로가 있다면 잠들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기상·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지켜야 한다”며 “수면무호흡증이나 신체질환이 원인이라면 해당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침대에 오래 있었다고 그 시간 내내 푹 잔 것은 아니다. 몇 시에 눈을 떴는지만큼 깬 뒤 얼마나 오래 잠들지 못했는지, 다음 날 일상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중요하다. 비슷한 시각에 잠이 계속 끊기고 아침 피로나 낮 졸림이 이어진다면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넘길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