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살았는데 ‘0원’?”
국민연금 분할연금 수급자가 10만명에 육박했다. 황혼이혼이 늘고, 혼인 기간 함께 쌓은 연금을 부부 공동의 노후 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은 영향이다.
28일 국가데이터처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이혼 가운데 혼인지속기간 30년 이상인 부부가 차지한 비중은 16.6%였다. 전체 이혼 6건 중 1건가량이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이었다.
이혼했다고 연금이 자동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전 배우자가 노령연금을 받고 있어야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분할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 배우자가 보험료를 한꺼번에 돌려받는 반환일시금을 청구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반환일시금을 이혼한 배우자와 나누는 장치가 없다.
◆10년여 만에 8.5배…수급자 87.7%가 여성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의 분할일시금 도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분할연금 수급자는 2014년 1만1802명에서 2025년 6월 9만9818명으로 늘었다. 10년여 만에 약 8.5배 증가했다.
분할연금은 이혼한 사람이 전 배우자의 노령연금 가운데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나눠 받는 제도다.
전 배우자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겹치는 실질적인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혼한 상태에서 전 배우자가 노령연금 수급권을 취득해야 하고, 분할연금을 청구하는 사람도 출생연도별 지급개시 연령에 도달해야 한다.
수급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25년 6월 전체 수급자 가운데 여성은 8만7491명으로 87.7%를 차지했다. 남성은 1만2327명이었다.
월평균 수급액은 2014년 18만4000원에서 2025년 6월 약 29만원으로 늘었다. 여성 수급자는 평균 31만원, 남성은 16만7000원을 받았다.
분할연금만으로 노후생활비를 충당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 가입 이력이 짧거나 없는 이혼 배우자에게는 매달 받을 수 있는 고정 소득이라는 의미가 있다.
◆전 배우자 반환일시금 받으면 분할 대상 없어
분할연금을 받으려면 전 배우자에게 노령연금 수급권이 생겨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출생연도별 지급개시 연령부터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가입 기간이 10년 미만인 사람이 60세가 됐거나 국적을 상실하고 국외로 이주한 경우에는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한 반환일시금을 청구할 수 있다.
반환일시금은 노령연금 수급권자가 월 연금 대신 자유롭게 선택하는 급여가 아니다. 가입 기간과 연령, 국적 상실, 국외 이주 등 법에서 정한 지급 사유를 충족해야 한다.
전 배우자가 반환일시금을 받으면 이혼한 상대방은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민연금 분할제도를 통해 받을 수 없다.
이미 발생한 분할연금 수급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 배우자에게 노령연금 수급권이 생기지 않아 이혼한 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도 성립하지 않는 구조다.
이혼 직후 분할연금을 미리 청구했더라도, 전 배우자가 반환일시금을 받으면 실제 연금 지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환일시금 수급자는 2024년 말 기준 19만8663명이다. 지급 사유는 가입 기간 10년 미만인 사람의 60세 도달이 69.62%로 가장 많았고, 국외 이주가 19.43%로 뒤를 이었다.
2025년 6월 말 기준 반환일시금의 평균 수급액은 약 655만원이었다. 최고 수급액은 1억3411만원에 달했다.
같은 혼인 기간에 형성된 국민연금이라도 지급 형태에 따라 분할 여부가 갈린다. 노령연금으로 지급되면 이혼한 배우자가 자신의 몫을 청구할 수 있지만, 반환일시금으로 지급되면 전 배우자 한 사람이 전액을 받는다.
이혼한 배우자가 관여하기 어려운 가입 기간이나 국외 이주 여부에 따라 분할 권리가 달라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사학연금에는 있는 ‘분할일시금’
공무원연금은 2018년 퇴직연금일시금 등의 분할제도를 도입했다. 전 배우자가 퇴직연금 대신 퇴직연금일시금이나 퇴직연금공제일시금, 퇴직일시금을 받더라도 요건을 갖춘 이혼 배우자가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분할받을 수 있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에도 같은 취지의 제도가 적용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에도 ‘분할일시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배우자에게 반환일시금이 지급될 때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의 일부를 이혼한 배우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혼인 기간과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각각 5년 이상이고, 전 배우자가 반환일시금을 청구하기 전에 이혼이 성립한 경우를 지급 대상으로 제시했다.
청구권 행사 기간은 5년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소액을 나누는 데 드는 행정비용과 공증비용을 고려해 분할 대상 반환일시금이 500만원 이상일 때만 신청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과제로 제시했다.
5년의 청구기한과 500만원의 하한선은 확정된 정부안이 아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제도 설계를 위해 제안한 기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이혼 시점에 혼인 기간 동안 쌓은 연금 가입 이력을 나누는 방안도 거론된다. 독일과 일본처럼 전 배우자의 연금 수령 시점까지 기다리지 않고 이혼할 때 각자의 연금 권리로 분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전 배우자의 사망이나 장애, 반환일시금 수령 여부에 따라 분할 여부가 달라지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분할연금 수급자 대부분이 여성인 만큼 반환일시금에도 혼인 기간의 기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매달 받는 연금에는 적용되는 분할 원칙이 일시금에는 빠져 있어, 고령 여성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