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시간 골든타임 넘겼는데… 장비 없어 맨손 구조, ‘인증샷’만 찍는 공무원도

베네수 강진 공식 사망만 1430명

부상 3238명·비공식 실종 7만명
경제적 피해 67억弗… GDP의 6%
당국 “군·경 등 1만4000명 동원”

현장선 장비 없어 맨손으로 구조
자원봉사 허가증 발급 절차 지연
인증샷만 찍고 철수하는 공무원도

11세 소년·15세 소녀 반려견과 구조
3일 만에 생환소식에 절망 속 희망
24개국서 물자·인력 지원도 이어져

지난 24일 베네수엘라를 덮친 규모 7.2와 7.5의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사망자는 1000명이 넘었고, 실종자는 7만명에 육박했다.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사고 후 72시간이 지나면서 피해 현장에서는 빠른 지원이 절실하지만, 미흡한 대응과 물자 부족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커지는 실정이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연쇄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43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부상자 수는 3238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집계된 수치(920명) 대비 500명 넘게 증가했다. 이날 오전 기준 민간 웹사이트에 가족들이 신고한 실종자 수는 최소 6만8900명에 달한다.

중장비 없는 구조작업 구조대원과 시민들이 2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해안도시 카라발레다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들추며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진 이후 골든타임이 지나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인력과 중장비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카라발레다=로이터연합뉴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주택 등 자산 손실 규모가 67억달러(약 10조3000억원)로,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혼란이나 재건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아, 전체 파급 효과는 직접 피해액의 1.5∼3배에 달할 수 있다고 UNDP는 경고했다.



현지시간 27일 오후 7시(한국시간 28일 오전 8시), 생존 가능성이 큰 시간대인 ‘골든타임’을 넘기면서 현장의 긴박감은 커져 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CNN방송은 “구조 활동은 이날 밤으로 암울한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며 “3일이 지나면 물 없이 생존할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AFP통신도 “(골든 타임) 이후에는 시신 수습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국영 TV를 통해 1만4000명이 넘는 군·경찰·소방관 등이 구조작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AP통신은 정작 구조가 필요한 현장에서는 구조대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자원봉사자 등 민간의 경우 공식 허가증을 보유한 사람만 현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가했는데, 허가증 발급 절차가 지연되면서 오히려 작업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AFP통신은 자원봉사자들이 새벽부터 허가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허가가 필요하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나”라는 한 봉사자의 말을 전했다.

27일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에서 소방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붕괴한 건물 잔해 위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의 미흡한 구조작업에 분노를 표하는 시민도 늘고 있다. AP통신은 공무원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셀카’만 찍은 뒤 도움을 주지 않고 철수하려 하자, 운전사를 끌어내리고 차량을 가로막은 사례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공무원들이 정부의 구조작업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진만 찍었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담요에 쌓인 시신이 최소 다섯 구 있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 시민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사흘째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일하는 척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진으로 딸과 사위를 한꺼번에 잃은 한 어머니는 “우리는 맨손으로 직접 아이들의 시신을 끌어내야 했고, 도움은 전혀 오지 않았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의료 체계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CNN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현장 의료진은 물자가 부족해 복도에서 치료하면서 임시방편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현지 의료진은 방송에 “의료용 가스, 진통제, 마취제, 항생제가 전혀 없다. 환자를 돌볼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CNN은 수년 전부터 베네수엘라 의료계가 물자 부족에 시달려 왔으며, 환자가 수술 전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지진으로 파손된 건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좌절감과 혼란 속에서도 베네수엘라 국민은 한 명이라도 더 생환하기를 바라면서 희망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에서는 건물 잔해에 3일 넘게 갇혀 있던 11세 소년이 구조됐다. 반려견과 함께 구조된 15세 소녀는 구조대원들을 향해 ‘손 하트’를 만들어 감사인사를 전했다. 생후 9개월 된 아기와 어머니, 80세 여성 등도 구조됐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유기견이었으나 훈련 끝에 구조견으로 활동하는 ‘쓰나미’도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국제사회의 구호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당국은 이날 기준 24개국이 구호물자와 2741명의 구조대원 등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미국은 1억5000만달러(약 2317억원) 규모 원조를 발표한 데 이어 추가 재정지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