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하게 해준 2026년 6월의 멕시코, 그라시아스 그리고 아디오스 [남정훈 기자의 올라!메히꼬]

[몬테레이=남정훈 기자] 홍명보호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도전을 현장에서 취재하기 위해 멕시코에 온 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만 40세인 제 인생 전체로 보면 3주는 0.0014%에 해당하는, 찰나라고 해도 좋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멕시코에서 지낸 3주 동안 저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한 듯합니다.

 

멕시코에 대한 첫 인상은 최악이었습니다. 과달라하라 공항에서 기자단 호텔로 이동하는 택시부터 제대로 ‘눈탱이’를 맞았거든요. 멕시코에 오기 전부터 ‘우버나 디디 등 플랫폼 기반의 택시를 타야 바가지를 안 쓴다’라는 얘길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우버 택시에 대해 대대적인 규제를 하고 있어 좀처럼 택시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호객 행위를 하던 택시를 탄 게 화근이었습니다. 우버 상으로 300페소(약 2만7000원)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 택시 기사는 저와 후배 기자까지 2명이니 600페소를 내라더군요. 워낙 장시간 비행으로 지쳤던 탓에 빨리 쉬고싶은 마음에 2배 가격을 받아들이고 신용카드를 내밀었지만, 그는 10배인 6000페소를 긁더군요. 한참을 택시 기사와 실랑이하다 차를 타고 도망가는 그를 붙잡기 위해 차 앞문을 잡고 달리다 내동댕이까지 쳐졌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쌍욕이 수십 번이나 튀어나왔지만, 그 마음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호텔 측의 요청으로 현지 경찰이 이튿날 호텔로 찾아와 사건 경위 등을 조사해가더니 그 다음날엔 현지 검찰까지 호텔로 와서 사기꾼을 꼭 잡아주겠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주멕시코 대사관에서 월드컵 전부터 응원단, 취재진 등 많은 한국인들이 멕시코를 방문할 것이니 멕시코 현지 검경과 치안부장관에게까지 각별히 신경써달라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하더군요.

 

사건 발생 2주쯤 지나 제가 과달라하라에서 몬테레이로 옮겨온 첫날,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튿날 몬테레이 한인 교회에 차려진 몬테레이 임시 영사 사무소를 찾아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하고 피해액 6000페소를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멕시코 대사관에서 사건·사고 전담 영사로 8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박대일 영사는 “8년 간 일하면서 기자님 같은 사건이 무수히 많았지만, 범인을 검거해 피해액을 변제 받은 건 이번이 고작 두 번째”라고 전해줬습니다.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는 주멕시코 대사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첫 인상은 노(怒)였지만, 멕시코에서 지내며 기쁨(喜)과 즐거움(樂)의 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어딜 가도 저를 보며 “꼬레아노?”라고 물으며 다가와 친절히 대해준 멕시코인들의 환대와 눈만 마주치면 옅은 미소로 “올라~” 인사해주는 따듯함 덕분이었습니다. 연예인도 아닌 제게 한국인이란 이유로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하던 수백명의 멕시코인들을 보면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멕시코 정통 타코는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맛있었습니다. 멕시코 데낄라는 쓰디쓴 맛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싶다가도 향긋한 향은 중독성이 있더군요. 무엇보다 제 생애 첫 월드컵 직관이었던 조별리그 첫 경기 체코전에서의 짜릿한 역전승의 순간은 희와 락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라이프의 결말은 노와 애(哀)로 점철됐습니다. 홍명보호가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A조 최약체라며 ‘1승 제물’이라고 꼽던 남아공에게 0-1로 패한 이른바 ‘남아공 쇼크’ 때문이었습니다. 남아공 쇼크 후 사흘간 다른 나라들의 경기를 맘 졸이며 저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를 쪼아야만 했고, 결말은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이었습니다. 화룡점정은 홍명보 감독의 사령탑 사퇴였습니다. 2년 간 대표팀을 이끌어 놓고, 사퇴는 단 2분 만이라니...이처럼 무책임한 감독이 또 있을까요. 

이번 월드컵을 흔히 2026 북중미 월드컵이라고 부릅니다. 총 104경기 중 3/4이 넘는 78경기가 미국에서 치러집니다. 저 역시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서도 홍명보호의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LA행을 꿈꾸다 보스턴, 시애틀 중에 한 곳은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저는 멕시코에서 한국의 세 경기를 본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 이번 대회를 추억하게 되면 저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아닌 ‘2026 멕시코 월드컵’이라 부르게 될 것 같습니다. 멕시코에서의 희노애락을 뒤로 하고 이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아디오스,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