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7월이면 대구 두류공원은 거대한 ‘치킨 메카’로 변한다. 끓는 기름 속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치킨과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는 매년 100만여명이 찾는 ‘대구 치맥페스티벌’의 풍경이다. 지역 대표 축제의 화려한 열기를 한 꺼풀 벗겨내면 대한민국 치킨 산업이 걸어온 역사와 대구가 ‘K-치킨’의 산실이 된 이유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30일 사단법인 한국치맥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대구가 ‘K-치킨’의 고향이 된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계육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대구·경북은 지리적 여건과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국내 양계 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특성상 여름철 폭염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이 가축 사육에 적극 나섰고, 피난민과 함께 유입된 양계 산업 종사자들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산업 기반이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도 교통의 요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운송과 도축이 용이했던 대구에는 1960~70년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양계장이 들어섰다. 닭고기 유통이 활발했던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에는 계육 가공업체들이 모여들었고, 이는 훗날 치킨 프랜차이즈 산업의 토대가 됐다. 풍부한 원재료와 치열한 외식업 경쟁은 새로운 조리법과 브랜드가 등장하는 환경을 만들었고, 대구는 자연스럽게 치킨 산업의 시험무대로 성장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양념치킨의 대중화도 대구와 깊은 인연이 있다. 1980년대 대구에서 창업한 윤종계 회장의 맥시칸치킨은 양념치킨의 대중화에 기여하며 치킨 시장의 변화를 이끌었다. 처갓집양념치킨과 스모프치킨 등 국내 1세대 브랜드들이 잇따라 등장했고, 간장치킨으로 대표되는 교촌치킨은 구미에서 출발해 대구를 중심으로 프랜차이즈 기반을 다졌다. 땅땅치킨과 호식이두마리치킨도 이 지역에서 성장하며 대구·경북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쌓인 치킨 산업 유산은 대구의 전후방 연관 산업을 뿌리 깊게 정착시켰다. 도심화로 대규모 양계장은 외곽으로 이전했지만, 닭고기 가공과 도축업은 물론 치킨 박스와 치킨무 등을 생산하는 협력업체들이 지금도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치맥페스티벌의 시작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던 시기와 맞물린다. 드라마 속 치맥 키워드가 주목받던 당시 여름밤 두류공원에서 치킨과 맥주를 즐기던 시민들의 일상에 착안해 지역 업계가 축제를 제안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한국치맥산업협회 관계자는 “여름철 두류공원은 시민들이 치킨과 맥주를 즐기던 곳이었다”며 “‘축제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모이면서 2013년 첫 치맥페스티벌이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산업에서 출발한 축제는 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예비 글로벌축제’에 선정됐고, 소비 중심 행사를 넘어 글로벌 B2B(기업간거래) 테스트베드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다. 국내외 치킨 가맹업계 관계자와 바이어들이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고, 올해 처음 열리는 ‘K-치킨 신메뉴 경연대회’에서는 청년 창업가와 레시피 개발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역 업계에서는 이 무대가 제2, 제3의 교촌치킨과 같은 성공 사례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치맥페스티벌이 다른 먹거리 축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지역 산업과 기업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경제 축제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방문객이 먹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간 상담과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라운지를 운영하며 국내외 바이어와 협력업체를 연결한다. 협회는 이 같은 구조가 대구 경제와 닭고기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낙수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회는 비록 닷새간의 축제가 도시 경제를 단숨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역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중국 칭다오 맥주축제처럼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대구를 찾으면 언제든 치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1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페스티벌 메인 축제장의 유료 좌석은 예매 시작 11분 만에 전석 매진될 만큼 높은 관심을 모았다. 다양한 아티스트 공연과 함께 ‘K-치맥 스트리트’, 치맥 웰컴로드, 치맥 놀이동산, 플리마켓 등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대구시 관계자는 “글로벌 수준의 콘텐츠와 첨단 운영 시스템을 준비한 만큼 올여름 대구가 세계인이 찾는 치맥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치맥산업협회 관계자는 “다양한 즐길거리를 준비했다”며 “방문객들이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