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본연의 맛 살린 ‘절제의 味학'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모노클’ 이중철 셰프

伊 유학·치열한 주방서 얻은 경험 토대로
‘좋은 재료로 정직한 맛’… 요리 철학 추구
발효·숙성·스톡·수비드 장시간 조리 선호

생면에 노른자 비율 높인 ‘보타르가 파스타’
야성적 풍미 살린 ‘숯불 양갈비’ 간판 메뉴
한 입 맛보면 요리사의 진심 느낄 수 있어
이탈리안 레스토랑 모노클(Monocle)에서 만난 이중철 셰프는 화려한 수식보다 담담한 진심이 먼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된 그의 요리에는 ‘정직함’이라는 공통된 결이 흐르고 있었다.

 

이 셰프가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했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는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엘 불리, 프렌치 런드리, 팻 덕 등 낯선 이름의 레스토랑들을 찾아보며 그는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낮에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밤에는 주방에서 일하며 요리사의 꿈을 키워 나갔다. 이후 이탈리아의 요리학교 알마(ALMA)를 졸업하고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알 포르티치올로(Al Porticciolo) 84’에서 파브리치오 페라리 셰프와 함께한 2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간이었다.

이중철 셰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송훈 셰프의 에스테번(S.Tavern)오픈 멤버로 참여하며 100개가 넘는 메뉴를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 추구하는 맛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 끝에 모노클이 탄생했다. 그는 손님이 볼 수 없는 주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결국 음식에 그대로 담긴다고 믿는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옳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 이는 이 셰프가 매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모노클은 그가 걸어온 시간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공간이다.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파인다이닝도,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캐주얼 다이닝도 아니고 좋은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건면과 생면을 모두 사용하고 코스와 단품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 역시 손님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경험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의 음식 철학은 명확하다. 재료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발효와 숙성, 스톡과 수비드처럼 시간을 들이는 조리법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리는 재료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대화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재료가 원하는 방향을 읽고 그것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이 셰프가 생각하는 요리다.

모노클의 시그니처 메뉴는 이 셰프의 요리 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화려한 기법을 과시하기보다 재료 본연의 특성을 존중하고, 오랜 시간 다듬어진 균형감으로 완성하는 방식은 두 메뉴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보타르가 파스타

첫번째 시그니처 메뉴인 보타르가 파스타는 모노클을 대표하는 메뉴이자, 이 셰프가 추구하는 ‘절제의 미학’이 담긴 한 접시다. 이 셰프는 이 메뉴를 처음 완성했을 때를 떠올리며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던 메뉴”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오일 파스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계산과 오랜 연구가 숨어 있다. 클램 스톡의 시원한 감칠맛, 치킨 베이스 스톡이 주는 깊이감, 그리고 생선 육수인 푸메가 더하는 섬세한 풍미를 조화롭게 결합해 소스의 뼈대를 만든다. 여기에 올리브오일과 갈릭 오일, 버터를 각각의 역할에 맞게 사용해 풍미의 층을 쌓아 올린다. 파스타 면 역시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인 생면보다 노른자 비율을 높여 더욱 풍부한 고소함과 탄력 있는 식감을 구현했다.

마지막으로 곱게 갈아낸 보타르가를 넉넉히 올려 바다의 짭조름한 풍미를 더한다. 각각의 요소는 독립적으로 강하게 주장하지 않지만, 한입 먹는 순간 모든 맛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셰프는 “복잡한 맛을 만드는 것보다 단순한 맛을 완성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보타르가 파스타는 바로 그 철학의 결정체다. 한 접시 안에서 재료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균형. 그래서 이 메뉴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기억되는 맛으로 손님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양갈비

두번째 시그니처 메뉴인 양갈비는 이 셰프의 섬세한 조리 기술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메뉴다. 양고기 특유의 개성과 풍미를 숨기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사용하는 부위는 프렌치랙이다. 약 10일간 웻에이징 과정을 거쳐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풍미를 더욱 깊게 끌어올린다. 이후 숯불 위에서 정성스럽게 구워내는데, 숯이 더하는 은은한 훈연 향은 양고기의 야성적인 매력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곁들여지는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큐민을 더한 당근퓌레는 은은한 향신료의 풍미로 양고기의 깊은 맛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화이트 발사믹으로 절인 얼갈이배추는 산뜻한 산미를 더해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준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조합이지만, 한입 맛보는 순간 각각의 요소가 왜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 셰프는 “양고기의 향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향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주변의 요소들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두 메뉴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 셰프의 진심을 담고 있다. 재료를 존중하는 태도, 시간이 필요한 과정을 기꺼이 선택하는 인내, 그리고 손님에게 오래 기억될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모노클의 시그니처 메뉴를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을 넘어, 이 셰프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쌓아온 요리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함께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기교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그의 음식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이 셰프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식 앞에서는 함께 웃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마음,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 주방에 선다. 주방은 언제나 치열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를 위한 한 접시를 묵묵히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진심은 결국 식탁 위에서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