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일부 선수단과 홍명보 전 감독이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축구팬들의 거센 항의로 아수라장 상태가 이어졌다.
전날 멕시코 현지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한 홍 전 감독을 비롯해 조현우,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 백승호, 김문환, 이강인, 설영우 등 선수 9명은 이날 오전 4시쯤 입국장에 들어섰다.
대표팀은 당초 선수들이 먼저 입국장을 통과한 뒤, 홍 전 감독이 맨 마지막에 나오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입국장에 고성이 오가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일부 선수와 경호원, 경찰, 축구협회 관계자 등 20여 명이 홍 감독을 호위한 채 가장 먼저 입국장을 나섰다.
선수단이 모습을 보이자 축구 팬들은 준비한 현수막을 들고 북을 치며 “홍명보 나가!” “20억 토해내라” 등을 외쳤다. 이 모습을 지켜본 홍 전 감독과 선수단은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각자 준비된 차량에 탑승해 공항을 떠났다.
현장은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유튜버들의 라이브 방송과 팬들의 고함이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12년 전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엿 투척’ 사태는 재발하지 않았으나, 팬들은 홍 감독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과 대한축구협회를 겨냥한 영정사진을 들며 항의를 이어갔다.
월드컵 이후 사퇴 의사를 밝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선수단이 공항을 떠나고 뒤늦게 모습을 보였다. 축구 팬들은 정 회장에게도 욕설과 고함을 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일부 팬은 ‘개껌’으로 보이는 물건을 정 회장에게 던져 경찰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대표팀이 경호원에 둘러싸여 곧바로 공항을 빠져나가면서 큰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 팬들은 선수단에 대해서는 “선수들 화이팅” “고생했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현장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집결했다. 신변 위협을 암시하는 온라인 게시글까지 등장하자 인천경찰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동대와 공항경찰단 소속 경찰관 160명을 배치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A조에서 1승 2패 승점 3으로 조 3위에 그쳤으며, 조 3위 12개 팀 중 10위로 밀려 32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이번 대회에서 최종 34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홍 전 감독은 탈락이 확정되자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짧은 입장문 낭독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퇴장하는 홍 감독 모습에 축구 팬들은 거세게 분노했다.
축구협회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2014년 대회 때도 진행했던 공항 귀국 행사를 이번에는 생략했다. 우리가 개최국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원정 대회에서 해산식이나 미디어 활동 없이 선수단을 철수시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장 손흥민을 포함해 현지에 남아있는 나머지 선수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7월1일까지 순차적으로 전원 귀국할 예정이다.
손흥민은 이날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른 척할 수도 없고, 현실을 피하고 싶지도 않다”며 “가장 먼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과 축구를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장문의 사과글을 게시했다.
이어 “나 역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이런 경기를 지켜봤다면 정말 안타깝고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며 “그렇기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감히 팬분들의 실망과 상처를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아 그 말씀을 드리는 것조차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렇게 말로 다 표현하기보다 국민 여러분과 축구 팬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나는 다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죽기 살기로 달려보겠다. 팬분들과 했던 약속은 절대 잊지 않았다. 팬분들이 나를 찾으실 때까지, 나를 필요로 하실 때까지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다시 잘 준비해 보겠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팬분들께 또 한 번 부탁을 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지만 모든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비판과 상처를 주기보다는 정말 힘드시겠지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