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성적에 관계없이 사퇴를 고민했다면 월드컵 전에 그 뜻을 밝혀서 선수단의 결속을 다시는 등의 ‘배수의 진’으로 활용하던가, 아니면 ‘남아공 쇼크’로 조 3위로 떨어졌을 때 32강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를 발표했어야 했다. 나머지 9개조의 결과를 다 초조하게 지켜보고 결국 조별리그 탈락이 결정되어서야 사퇴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월드컵 성공을 거둬도 사퇴를 고려했다니. 전형적인 ‘물타기’다. 그런다고 폭망한 한국 축구가 살아난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위한 물타기인가.
30일 한 매체에 따르면 홍명보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였던 임기를 채우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 이유로 내세운 게 불공정 논란 속에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자신의 존재 때문에 한국 축구대표팀이 응원 받지 못한다는 것. 그걸 아는 사람이 이른바 ‘빵집 회동’으로 대표되는 졸속적이고 불공정한 절차를 밟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건가. 감독직 수락 이후 월드컵 예선이나 평가전 등 A매치 때마다 ‘홍명보 나가’라는 야유가 나왔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대표팀이 응원을 받지 못하는 게 고민이었다면 그때라도 그만뒀어야 한다. 대표팀 사령탑을 맡을 사람이 홍명보 감독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팬들의 야유와 정치권의 뭇매 속에서도 홍명보 감독이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사령탑직을 유지한 건, 이제 와서 이유를 생각해보면 딱 하나다. 12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쇼크’로 대표되는 최악의 졸전을 거듭한 끝에 1무2패로 탈락했던 과거를 씻고 명예회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현역 시절 ‘아시아의 베켄바워’, ‘영원한 리베로’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았던 홍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장까지 역임했다. 선수로는 실패를 몰랐고, 지도자로 변신해서도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까지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축구 인생 유일한 오점이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갖은 야유와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사령탑직을 유지한 건 12년 전 오점을 지워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번 남아공전을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 12년 전 브라질 월드컵 얘기가 나오자 “저는 그저 지금 선수들과 이번 월드컵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이다. 저의 개인적인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아울러 예전의 실패를 명예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제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저의 개인적인 부분을 이번 월드컵에 결부시키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식석상에서 나올 수 있는 흔한 수사였을 뿐이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자신의 오점을 지워내버리고 싶었으면 10년간 공부하고 고민하며 발전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 수비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인 손흥민의 활용을 최소화하고, 남아공전에서는 아예 선발에서 빼버리는 판 짜기 능력에 패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스리백만을 고수하는 인게임 조정 능력 부족 등 10년 전에 비해 발전된 모습은 전혀 없었다.
전술형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치자. 카리스마로 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는 게 이번 월드컵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체코-멕시코전에 비해 남아공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경기력이 떨어진 것을 두고 선수단 불화 등 루머가 흘러나왔다. 홍 감독도 “멕시코전 이후 팀 내부가 어수선해진 부분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미 한국 축구가 대폭망했는데, 월드컵 성공과 상관없이 감독을 그만두려 했다는 얘기가 나와서 무엇 하나. 그저 물타기에 불과한 자기변명이다. 인터넷 상의 밈을 인용해 이 글을 마치려 한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