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환자에 내과적 이유로 수술 거부’ HIV 환자 진료거부 차별 아냐”…인권위 차별 인정 들쭉날쭉?

골절 환자 ‘HIV 양성’ 확인 후 돌연 수술 거부
인권위, 11일 차별 진정 각하 통보
“피해자 조사도 않고 병원 주장만 듣고 판단”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한 70대 남성이 국가인권위에 제기한 차별 진정이 각하되면서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권위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없이 병원 측의 주장만 듣고 ‘피해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다. 앞서 인권위는 HIV 환자들에 대한 진료 거부에 대한 차별 시정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HIV 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 등 시민단체는 30일 10시30분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인권위의 진정 각하 결정은 의료현장 진료거부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구경북 지역의 HIV 감염인 자조모임 ‘해밀’ 회장인 활동가 낭만은 “A씨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의 태도는 돌변했다”며 “대체 치료를 거부당한 뒤 동네 병원에서 6주간 깁스를 한 A씨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고통과 병원 문전에서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게티이미지뱅크

단체들에 따르면 7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2월 골절상을 당해 대구 한 전문병원을 찾아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혈액 검사 결과 HIV 양성 나왔고, 수술 당일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을 거부당했다. 같은해 4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과 A씨는 인권위에 수술 거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라는 취지의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를 각하했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각하 결정서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1호 ‘조사대상아님’의 이유로 A씨 사건을 각하하기로 결정했다”고 통지했다. 인권위는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예정된 수술을 취소했다고 볼만한 사정 등을 찾을 수 없고 피진정인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는 등 직접적인 피해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 측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레드리본은 조사 절차조차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각하라고 주장했다. 김지영 레드리본 대표는 “피해자 조사 없이 병원 측의 이야기만 들었다”며 “피진정인 측의 주장을 진정인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내린 일방적 각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병원은 이전에도 HIV 환자들의 수술을 진행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병원 측에 이전엔 수술을 해줬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의료진이 대거 바뀌어 설득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HIV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 상황을 애둘러 설명했다는 것이다.

 

현재 A씨는 거동이 어려워져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을 수 있었던 A씨는 혼자서 서 있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김 대표는 “수술 거부 자체가 피해이고,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당시 수술이 이뤄졌다면 이렇게까지 상태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권위는 같은 해 4월 비슷한 사례 두 진정에 대해 차별행위로 판단했다. 지난 2024년 척추 수술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며, HIV 전문 의료진이 없어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다른 병원 진료를 권유한 것’이라며 수술을 거부한 병원에 대해 차별적 행위를 인정했다. 또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예약한 HIV 환자의 수술을 거부한 병원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의료진과 직원 대상 직무교육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당시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한 진료거부 사례가 반복적으로 진정 제기되고 있는 만큼, 병력을 이유로 한 차별 시정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