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소란한 기색이 일면 슬그머니 그쪽으로 옮겨가 보는 버릇이 있다. 스스로도 경망스럽다 생각하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버릇 중 하나다. 가보면 대부분 사소한 다툼이거나 작은 동물을 발견한 사람들의 분주한 호들갑에 가까웠다.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질 때에는 색과 무게가 완전히 다른 침묵이 주위를 뒤덮어 오히려 눈치채기 어려웠다. 그러니 소란한 공간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건 별일 아니라는 확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소소함은 한밤 공원에서의 일이었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뒤섞여 있는 걸 보니 모두 모여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인 듯했다. 자전거를 탄 두 아이와 우뚝 서 있는 아이 둘이 있었는데, 길 복판에 자전거 한 대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여자 세 명이 작은 원을 그리며 아이들과 마주 보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고개를 바짝 든 채 무언가를 끊임없이 토로하는 중이었다. 한밤인 데다 잔뜩 흥분한 아이 목소리가 상당해서 멀리 있는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흘금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걷는 속도를 늦춰 그들 옆을 천천히 지나치며 아이의 말을 엿들었다.
문제는 아이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아이는 복받치는 울음을 참느라 불규칙하게 올라오는 딸꾹질을 참느라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말과 숨과 헐떡임이 뒤엉켜 제대로 전달되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야지.’ 나는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섣불리 위로하거나 울음을 참도록 종용하거나 똑바로 말하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아이가 하는 모든 얘기를 끝까지 들었다. 아이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어 비로소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누구 하나 아이의 감정을 끊어내는 사람이 없었다.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