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청년 없는 성장

취업난 심화에 ‘전업 자녀’ 등장
노동시장 벗어난 현실 보여줘
청년 고용은 국가 생존의 문제
정부가 특단의 대책 제시해야

최근 청년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전업 자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2023년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한 중국에서 건너온 이 말은, 취업 시장에서 밀려나 부모와 함께 살며 가사와 돌봄을 전담하는 대신 용돈을 받는 청년을 뜻한다. 이 네 글자 속에는 신규 채용 감소로 끊겨버린 고용 사다리와, 청년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물가·주거비 부담이라는 암울한 현실이 함축되어 있다.

화려한 경제 지표 이면에는 그늘이 짙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수출과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고용 없는 성장’과 ‘최악의 청년 실업’이 자리하고 있다.

김수미 경제부장

청년을 일컫는 신조어는 언제나 그 시대의 사회·경제상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청춘이 언제 편한 적이 있었냐고 하겠지만, 1990년대의 ‘X세대’와 ‘오렌지족’은 소비와 개성을 상징했다. 사회는 그들을 철없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의 주체로 인정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오면 취업 걱정 없고, 성실하게 직장 다니면 내 집 마련이 어렵지 않던, 경제 성장의 과실이 청년층에게도 돌아가던 마지막 시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캥거루족’은 부모 곁을 떠나지 못했고, 정규직 대신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 비정규직 확대, 정규직 진입 장벽 상승이 누적되던 때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0년 들어서는 ‘88만원 세대’, ‘N포세대’, ‘흙수저’ 같은 말이 유행하며 청년들의 ‘불안’이 ‘좌절’로 바뀌었다. 2020년대 ‘쉬었음’(구직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는 상태) 청년과 전업 자녀의 등장은 취업을 ‘포기’하고 아예 노동시장을 벗어난 현실을 보여준다.

과거의 수출 호조는 공장을 돌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수출 핵심동력인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기술·장비 집약적 산업으로, 전체 제조업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 기업의 역대급 실적 훈풍이 유독 채용시장에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챗GPT 출시 이후 3년간 AI 고(高)노출 업종에서 15∼29세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가 사라진 반면, 50대 일자리는 오히려 20만9000개 늘었다. 청년 고용률은 지난 5월 기준 25개월 연속 하락했고, 상용근로자 비중도 고령층에 밀리면서 세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AI에게 치이고, 부모세대에게 밀려나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쉬었음 청년이 40만명에 육박하고, 전업 자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가족 공동체가 국가를 대신해 최후의 복지 안전망 역할을 떠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구조적 난제를 해결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청년뉴딜 추진방향’을 통해 총 2만3000명의 단기 채용 목표치를 제시했지만 체납관리 실태조사원, 농지조사원 등 대부분 임시 일자리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과연 청년들의 경력 형성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단기 인턴십이나 일시적인 보조금 지급 같은 미봉책으로는 AI가 주도하는 노동시장의 대격변을 감당할 수 없다. 경력 초기에 제대로 된 기반을 다지지 못한 청년들은 평생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이는 곧 혼인과 출산의 포기로 이어진다. 반도체와 AI가 가져온 풍요가 대기업과 자본가의 잔치로만 끝난다면, 그 성장은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청년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AI 전환기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자리를 ‘나눠주는’ 수준을 넘어, 교육 시스템부터 노동시장 구조까지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청년 고용은 복지의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수준의 비상한 각오로, 청년을 위한 특단의 일자리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