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뒤통수’부터 ‘고대 호날두’까지...조롱을 권하는 ‘AI 사회’

AI가 만든 ‘홍명보 뒤통수’·‘고대 호날두’ 영상 수백만 조회 수 기록
유명인 넘어 일반인까지…AI 조롱의 일상화
현실감이 키운 통쾌함…혐오 확산·법적 책임 우려도

“AI(인공지능)라도 속이 다 시원하네”

 

지난달 29일 유튜브에 올라온 ‘홍명보 때문에 화가 나서 만든 위로 영상’에 이 같은 댓글이 달렸다. 독일 축구선수 옌스 카스트로프가 홍명보 감독의 뒤통수를 때리는 내용을 담은 이 영상은 2일 조회수 1463만 회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2026년 제일 잘 만든 AI 영상 1위”, “이랬으면 진짜 국민영웅 됐다”, “AI 영상 중 이게 제일 웃기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독일 축구선수 옌스 카스트로프가 홍명보 감독의 뒤통수를 때리려는 장면을 AI로 만든 영상. 유튜브 ‘사실연구소’ 캡처

생성형 AI를 활용해 유명인을 풍자하거나 희화화하는 영상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월드컵 시즌을 맞아 축구를 소재로 한 AI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세트장에서 “한국 오니까 고대 라인 아니면 경기 못 뛴다. 고대 가려고 대치동에서 학원 다니고 있다”고 말하는 AI 영상은 이날 유튜브 조회 수 365만 회를 넘겼다.

 

◆ AI 조롱, 기존 패러디·풍자와 무엇이 다른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장면을 AI가 실제처럼 구현하면서 이용자들은 이전보다 더 큰 재미와 통쾌함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이용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현실감이 특정 인물에 대한 조롱을 손쉽게 소비하게 하고, 혐오 정서까지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AI 조롱’ 영상이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물론, 법적 분쟁의 소지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 클립아트코리아

 

‘AI 조롱’ 영상은 상상을 현실처럼 구현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패러디나 풍자와 다르다. 과거에는 타인이 성대모사 하며 따라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풍자가 이제는 실제 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재현되면서 이용자들의 몰입감도 한층 커진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 패러디는 방송 심의 등의 영향으로 표현에 일정한 제약이 있었지만,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원하는 장면을 거의 그대로 구현해준다”며 “실제와 매우 유사한 영상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대리만족 효과가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I 조롱’ 영상이 주는 통쾌함 이면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임 교수는 “AI는 보는 사람에게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줄 수 있지만, 그만큼 영상 속 당사자에게는 기존 풍자보다 훨씬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며 “상처가 또 다른 공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사회적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들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사이에 놓인 ‘AI 조롱’ 영상

 

AI를 활용한 조롱은 스포츠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일반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방영한 tvN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4’의 여성 출연자가 한 남성 출연자를 계단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는 내용의 AI 영상은 792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이용자 중 다수는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며 영상을 거리낌 없이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AI를 활용한 조롱이 ‘일상 속 놀이’로 자리 잡자 혐오 정서도 더 빠르게 확산하는 모양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과 목소리를 활용해 희화화한 AI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콘텐츠가 청소년에게도 쉽게 노출되는 만큼,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특정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희화화하고 혐오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아가 실제 인물을 활용한 ‘AI 조롱’ 영상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디케이엘 법률사무소 소속 권단 변호사는 “실제 인물의 얼굴을 무단으로 활용한 AI 영상은 일반인의 경우 초상권 등 인격권 침해가 문제 될 수 있다”면서 “유명인은 상업적 이용 여부에 따라 법적 쟁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풍자와 패러디는 사회 풍자나 비평이라는 목적 아래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속할 수도 있지만, 오로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영상 내용에 비방 목적이 있고 상대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가 있다면 명예훼손 여부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