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하지를 지나 7월로 접어든 지금은 한 해 중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때다. 밭의 작물과 바다의 물고기, 해를 품은 산천의 생명들이 그 기운을 온몸에 채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농사일이 한창으로 바빠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이맘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힘이 나는 보양 한 끼’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옛 속담에는 이 계절을 슬기롭게 나는 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7월 농어는 보기만 해도 보약”, “일해백리(一害百利), 마늘이 인삼보다 낫다”, “소금은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 KBS1 ‘한국인의 밥상’은 2일 오후 7시 40분 방송에서 이 세 가지 옛말을 따라 한여름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밥상을 찾아 나선다.
◆“7월 농어는 보기만 해도 보약이다”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겨울 산란을 마친 농어는 봄부터 여름 내내 햇볕을 머금은 먹이를 찾아 다니며 살을 찌운다. 7월에 이르면 살이 단단히 차오르고 윤기가 돌아, 그 모습만으로도 ‘보약’이라 불릴 만하다. 이때 갓 잡은 농어를 배 위에서 바로 떠 제철 채소와 함께 버무려 먹는 농어물회는 풍요로운 서해가 내어주는 여름 별미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바다에서 나고 자란 젊은 어부 김진태씨와 아내 지선아씨는 14년 전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이 바다에 터를 잡았다. 귀어한 딸이 고생할까 염려돼 손주들을 돌보러 내려온 장모 이금년씨는 딸 부부를 생각하며 농어맑은탕을 끓인다. 제철 농어의 뼈를 푹 고아낸 국물에 무와 미역을 듬뿍 넣어 깊이를 더하면,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서해안을 대표하는 여름 보양식이 된다. 온 가족이 기대어 사는 무창포 바다가 선물하는 여름 한 그릇이다.
◆“일해백리, 마늘이 인삼보다 낫다” – 충남 서산시 온석동
마늘은 예로부터 “강한 냄새 하나만 해로울 뿐, 나머지는 모두 이롭다”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라 불렸다. 인삼보다 효능이 낫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여름철 원기 회복을 돕는 대표 식재료다. 장마가 오기 전 캐내야 하는 서산 육쪽마늘은 겨울의 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려 수확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땅의 기운을 가득 품은 알찬 결실이다.
서산이 고향인 조인애씨의 손에서는 지금만 맛볼 수 있는 햇마늘 요리가 쉴 새 없이 탄생한다. 갓 캐낸 햇마늘을 듬뿍 올려 구워낸 마늘닭구이는 매콤달콤한 맛으로 무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되살린다. 겨울 음식으로 알려진 게국지는 여름 돌게(민꽃게)와 민물새우를 넣고, 늙은 호박 대신 단호박으로 단맛을 더한 뒤 마늘로 양념해 ‘여름게국지’로 재탄생한다.
딱 부부가 먹을 만큼만 마늘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행복을 채워가는 조인애씨와 남편 양주훈씨. 여섯 쪽이 서로 기대어 자라는 마늘처럼, 마주 앉아 밥 한 끼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말한다. 알싸한 청춘을 지나 은은한 단맛이 도는 지금의 삶이 마늘과 꼭 닮아 있다.
◆“소금은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 – 충남 태안군 이원면
볕이 가장 뜨거운 이 계절, 그 해를 온전히 품어야 비로소 좋은 소금이 영근다.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는 47년째 염전을 지켜온 소금 농부 정갑훈씨가 있다. 그가 보물처럼 아끼는 소금 가운데 ‘황토소금’은 태안 해송 솔가지를 태워 얻은 재와, 해독 능력이 뛰어난 황토를 개어 만든 지장수로 다시 숙성시켜 빚어낸 귀한 소금이다.
소금 농부가 천직이라 믿으며 매일 새벽같이 염전으로 향하는 정갑훈씨 곁에는 소태 같은 세월을 함께 버틴 아내 박명희씨가 있다. 일 욕심 많은 남편 덕에 소금보다 짠 세월을 보냈다는 그를 위로해 준 건 언제나 소금으로 만든 반찬들이었다.
배고프던 시절, 적은 양으로도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어 최고의 짠 반찬으로 꼽히던 소금게장은 일주일간 소금물에 절인 꽃게를 보리밥 위에 올려 먹어야 제맛이다. 소금밭에서 흘린 땀을 달래주던 보양식 박속낙지탕은 갓 잡은 낙지를 박속과 함께 넣고 오로지 소금만으로 간을 맞춰 끓인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 한 숟가락에는 소금꽃이 만개하던 염전의 세월과 부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