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 디자인(Speculative Design) 분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셀린 박이 지난달 17일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Core77 Design Awards 2026에서 Speculative Design 부문 Winner를 수상했다.
1995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Core77 Design Awards는 전 세계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하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로, 산업디자인과 인터랙션, 서비스, 지속가능성, 미래기술, 사회혁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다. 특히 Speculative Design 부문은 미래 사회와 기술, 문화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조명하는 분야로 평가받는다.
수상작 ‘Mare Regula’ 는 제주 해녀 공동체를 장기간 연구한 민족지학(Ethnography)과 사변적 디자인을 결합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전시 ‘제주 해녀: 사라져 가는 세계’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셀린 박은 제주 출신이 아닌 외부 디자이너라는 위치에서 해녀를 관광 콘텐츠나 전통문화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시각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약 2년 전부터 꾸준히 제주를 오가며 해녀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소통과 교류를 이어왔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Speculative Design Seoul을 통해 디자이너들을 모집해 제주 하도리 해녀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몰입형 워크숍도 기획·운영했다.
제주에 장기간 상주하며 수행한 민족지학적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해녀 공동체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연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광 자원으로서의 해녀’가 아니라 엄격한 위계와 내부 규율, 협력과 통제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공동체의 질서에 주목했다. 특히 원로 해녀들의 생생한 구술 증언과 현장 조사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규율과 통제 체계를 상징하는 잠금굴, 손벌, 머달, 가달 등 사변적 오브제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이번 수상은 상업적이거나 기능적인 제품 디자인을 넘어, 디자이너가 인류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셀린 박은 “대학 시절부터 동경해 온 Core77에서 수상하게 되어 영광이다. 폐쇄적인 해녀 공동체의 마음을 열었던 민족지학적 연구와 사변적 디자인을 인류학적으로 융합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셀린박은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사변적 디자인의 대표적 이론가인 앤서니 던과 피오나 레이비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지난 10여 년간 Speculative Design Seoul을 운영하며 국내에 사변적 디자인을 소개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전시와 워크숍,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