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시작해 보니 곳간이 벌써 텅~… 민선 9기 공약 이행 ‘빨간불’

재정자립도 20% 미만 158곳
철원 등 접경지역 ‘한 자릿수’
경기, 7조 넘는 채무 안고 출발

세입 ↓ SOC 분담 등 의무지출 ↑
“국세·지방세 구조 손질” 지적

민선 9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1일 일제히 임기를 시작했지만 상당수 지방정부는 출발부터 ‘재정난’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자체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복지비와 국·도비 매칭사업 부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분담금 등 의무지출은 늘어나면서 신규 사업과 공약 이행에도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재정 점검을 민선 9기 경기도정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추 지사는 1일 취임사에서 “민선 9기 경기도는 7조원이 넘는 채무를 안고 출발했고, 예산 부족으로 3000억원 규모 사업은 반영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구 1390만명,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인 경기도이지만 재정자립도는 2022년 61.5%에서 올해 54.39%로 7.11%포인트 하락했다.

 

기초지자체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2일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226개 기초단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20%에도 못 미치는 곳은 158곳(69.9%)으로 집계됐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재원이 일반회계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전국 기초단체 10곳 가운데 7곳은 자체 재원만으로 예산의 20%도 충당하지 못하는 셈이다. 자치권 행사를 위한 자체 수입이 10%에도 못 미치는 기초단체도 48곳(21.23%)에 달했다.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곳은 경북 영양군으로 6.32%에 불과했다. 전남 완도군(6.40%), 경남 산청군(6.40%), 전남 고흥군(6.42%), 구례군(6.56%), 보성군(6.59%), 전북 장수군(6.65%) 등도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곳이다. 강원 철원군(9.64%)과 화천군(8.26%), 양구군(8.57%), 인제군(8.62%) 등 접경지역 기초단체들도 재정자립도가 모두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반면 기업이 밀집한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자립도를 보였다. SK하이닉스 본사가 위치한 경기 이천시가 55.13%로 가장 높았고 서울 중구(54.15%), 강남구(53.64%), 서초구(53.02%), 경기 성남시(52.96%)가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지역 간 격차 속에 새로 취임한 단체장들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신동화 경기 구리시장은 취임사에서 현재 재정 상황을 ‘심각한 재난’으로 규정하며 재정안정화TF를 구성해 불필요한 예산을 전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고보조금 매칭 비율을 재정자립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경기북부 지자체들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방정부들은 경기 둔화와 인구 감소로 지방세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복지비와 국·도비 매칭사업 부담, 노후 기반시설 유지관리 비용은 계속 늘어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재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다.

 

금창호 한국정책분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자립도 하락은 단체장의 능력보다 지방재정 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의무지출이 늘어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신규 사업이나 공약을 추진할 수 있는 재량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금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자립도 격차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행정서비스와 복지 수준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국세와 지방세 간 세원 구조를 재조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