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는 두려운가 [이지영의 K컬처 여행]

그래미가 마침내 움직였다.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BTS를 비롯한 K팝 아티스트들의 수상 가능성이 열렸다는 환호가 쏟아졌다. 그런데 자격요건을 들여다보는 순간 반가움은 사라지고 낯익은 불쾌함이 올라왔다.

 

이 부문에 출품하려면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유의미하게 사용’해야 한다. 전체 영어 가사는 제외된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영국 밴드가 영어로 노래한다고 해서 ‘앵글로색슨 팝’ 부문에 가두는가. 아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이 영어로 노래해도 팝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BTS의 신보 ‘아리랑’에서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한 타이틀곡은 전곡 영어 가사다. 그래미는 이 곡을 아시안 팝 부문에서 원천 배제했다. 갑자기 새로운 부문 신설과 함께 자격요건에 언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존중이 아니라 격리다.

 

그래미의 BTS 대응 역사는 사실 일관되게 불쾌했다. 2022년 ‘버터’로 2년 연속 후보가 됐지만 탈락했다. 기립박수를 받은 퍼포먼스 뒤에 돌아온 건 또 한 번의 빈손이었다. 시청률이 급등할 때는 무대 앞번호를 줬고, 상을 줄 차례엔 끝번호로 밀었다. 올 초 K팝 최초의 그래미 트로피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에게 돌아갔고, 그마저도 본 시상식 전 사전 시상이었다. 그리고 이제 전용 부문을 만들었다. 이를 두고 ‘농어촌 전형 신설’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건 정확한 직관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수십년간 아시아 영화를 ‘외국어 영화상’이라는 별도 트랙에 가뒀다. 봉준호가 황금종려상을 받고 ‘기생충’이 작품상을 거머쥔 뒤에야 그 장벽이 흔들렸다. 그래미가 지금 하는 일은 그것의 음악판 반복이다. 마치 아시아 음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듯한 겉모습 뒤에는 ‘너희는 너희끼리 경쟁하라’라는 구조적 배제의 논리가 그대로 살아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 대표는 신설 배경으로 “아시안 팝은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힘 중 하나”라고 했다. 중요하다는 인정과 동등하다는 인정은 다르다. 그래미는 전자는 했지만 후자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중요한 힘이라면 왜 같은 무대에서 겨루지 못하는가.

 

아시안 팝이 언어의 장벽 없이 같은 무대에 서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래미는 이미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쌓아온 주류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같은 무대를 극구 피하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의 고백은 아닐까.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