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중국사/ 린다 제이빈/ 최경은 옮김/ 진성북스/ 2만6000원
두 가지 이유로 중국사 입문은 늘 망설여진다. 너무 길고, 너무 복잡하다. 수천년에 걸친 왕조의 흥망과 사상, 문화가 켜켜이 쌓여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 호주 작가 린다 제이빈은 그 장벽을 과감히 낮춘다. 학술서다운 무게 대신 속도감을 택해 방대한 중국사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쳐 보인다.
저자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아시아사를 공부하고 중국·대만·홍콩에서 생활하며 중국어를 익혔다. 40여년간 소설과 논픽션을 발표해 온 작가이자 천카이거의 ‘패왕별희’, 장이머우의 ‘영웅’, 왕가위의 ‘일대종사’ 등 영화를 영어로 옮긴 번역가다. 현재는 호주국립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를 넘나든 이력은 책의 서술방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료를 촘촘히 검증하고 엄밀하게 제시하는 대신 장면과 인물을 강조하며 이야기로 풀어낸다.
책은 천지가 혼돈의 알 속에 갇혀 있을 때 거인 반고가 세상을 열었다는 창세신화로 문을 연다. 이어 약 3500년 전 갑골문, 주나라의 태평성대, 공자의 시대를 지나 시진핑 체제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짧다고 연표만 훑지는 않는다. 저자는 중국사를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어낸다. 시대에 따라 영웅은 악당이 되고, 충신은 역적이 된다. 번영은 반란을 낳고, 황제와 반란군, 지식인과 혁명가가 번갈아 역사의 무대에 오르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을 움직여 왔다.
기존 중국사 개설서에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던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한 점도 돋보인다. 티베트의 ‘전사왕’ 송첸캄포에게 시집가 불교 전파에 기여한 당나라 문성공주, 관리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기녀가 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된 설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티프로 널리 알려진 화목란, 여성만으로 구성된 무장조직을 이끌며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근대 중국 혁명가 탕췬잉…. 저자는 왕조 중심 역사에서 쉽게 지나쳤던 여성들의 삶을 곳곳에 배치해 중국사를 한층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