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 16人의 통찰, AI 혁명의 태동이었다

앨런 튜링·빌 게이츠·제프리 힌턴
문명 고도화 한 시대 주역들 조명
창의·집념의 역사 흥미롭게 풀어

컴퓨터·인터넷·딥러닝 혁신 계보
AI, 첨단기술 아닌 인류문명 축적
기술 원리·디지털 시대 흐름 조망

디지털 문명과 AI혁명/ 박영규/ 통나무/ 1만9000원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던진 이 질문은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됐다. 이제 AI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AI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기술이 아니다. 컴퓨터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터넷, 웹, 검색기술을 차례로 발전시켜 온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이 한 세기 가까이 축적된 결과다.

앨런 튜링(왼쪽부터), 클로드 새넌, 윌리엄 쇼클리, 데니스 리치, 빌 게이츠, 팀 버너스리, 제프리 힌턴

인문학 작가 박영규의 ‘디지털 문명과 AI 혁명’은 이러한 AI 발전의 역사를 컴퓨터와 인공지능 시대를 설계한 16명의 혁신가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AI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하나의 거대한 문명사처럼 읽힌다. 저자는 개별 인물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발견과 발명이 어떻게 다음 혁신으로 이어졌는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디지털 문명의 계보를 그려낸다.

AI의 출발점은 단연 튜링이다. 현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1936년 모든 컴퓨터의 원형이 된 ‘튜링 머신’ 개념을 제시했다. ‘튜링 머신’은 계산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이론적(추상적) 계산 모델이다. 오늘날 컴퓨터과학의 출발점이 된 개념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전후에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며 인간과 기계의 지능을 비교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오늘날 AI 연구 역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그의 질문에서 여전히 출발한다.

박영규/ 통나무/ 1만9000원

디지털 혁명의 또 다른 기둥은 클로드 새넌이다. 그는 모든 정보를 0과 1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정보이론을 확립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AI가 처리하는 방대한 데이터 역시 이 원리 위에서 움직인다. 새넌의 업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 역시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반도체 시대를 연 주역도 소개된다.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진공관 시대를 끝냈고, 로버트 노이스는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에 집적하는 집적회로(IC)를 개발하며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오늘날 AI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고성능 반도체 역시 이들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하드웨어의 발전만으로는 컴퓨터 시대가 열리지 않았다. 데니스 리치와 켄 톰프슨은 유닉스 운영체제를 개발하며 현대 운영체제의 표준을 만들었고, 리치가 개발한 C언어는 지금도 대부분의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의 토대가 되고 있다. AI 서버의 상당수가 리눅스 기반으로 운영되는 것 역시 이들의 유산과 맞닿아 있다.

컴퓨터를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일반인의 생활도구로 바꾼 인물은 더글러스 엥겔바트다. 그는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하이퍼텍스트, 화상회의, 공동작업 시스템 등을 세계 최초로 시연하며 인간과 컴퓨터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했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기술을 매킨토시와 아이폰에 구현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었고, 빌 게이츠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대중화했다.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면서 디지털 혁명은 또 한 번 도약한다. 빈트 서프는 TCP/IP 프로토콜을 개발해 인터넷의 기초를 세웠고, 팀 버너스리는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해 인터넷을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 생성형 AI가 학습하는 방대한 데이터 역시 인터넷과 웹이라는 거대한 정보망 위에서 축적됐다.

AI 혁명의 결정적 전환점은 제프리 힌턴에게서 찾아온다. 그는 오랫동안 외면받던 인공신경망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2012년 연구팀이 개발한 ‘알렉스넷’을 통해 이미지 인식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며 딥러닝 시대를 열었다. 생성형 AI와 자율주행, 음성인식, 자동번역 등 오늘날 AI 기술의 핵심 역시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 책의 강점은 개별 천재들의 업적을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튜링의 계산 이론이 새넌의 정보이론과 만나고, 존 폰 노이만의 컴퓨터 구조가 쇼클리와 노이스의 반도체 기술로 구현됐으며, 리치와 톰프슨의 운영체제가 잡스와 게이츠의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촘촘하게 연결한다. 여기에 인터넷과 웹, 검색기술이 축적한 데이터가 힌턴의 딥러닝과 만나면서 오늘날 생성형 AI 혁명으로 이어졌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는 AI를 단순한 첨단기술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AI는 어느 한 사람의 천재성이 만든 발명품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혁신가들의 상상력과 실패를 견딘 집념, 그리고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이 축적되고 연결되면서 탄생한 인류 문명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하면서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AI혁명 시대에 독자에게 기술의 원리뿐 아니라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 문명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양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