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아는 사람 집 외

아는 사람 집(허수경, 난다, 1만4000원)=“바다는 검고 깊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시어가 출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단 하나의 시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니면 시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니면 여러 시적 자아들이 그도 아니면 수많은 이미지가 시 자체의 무의식이 모여 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다.” ‘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중 일부. 허수경(1964∼2018) 시인의 유고 산문집이다. 시인이 남기고 간 노트북에는 출처 없이 저장된 몇 편의 파일만이 남았다. 책의 1부는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고려대학교 웹진 ‘민연’에 발표한 연재 원고 모음을 담았다.

천사의 위스키(에릭 오, 민음사, 1만7000원)=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의 첫 소설집이다. 에릭 오는 픽사의 ‘도리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에 참여한 애니메이터이다. 책에 수록된 9개 작품의 인물들은 예외 없이 ‘지체된 순간’에 속해 있다. 일상은 돌아가지만 기쁨은 증발해 버린 상태, 완전한 절망도 완전한 희망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서 버티는 감각, 일본의 정신과 의사 다이라 고겐이 이름 붙인 ‘반우울’의 인간들이다. AI가 쓰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보고 있었는가’를 묻게 된 소설가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빛의 전시(권오경, 김지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1만7000원)=한국계 미국인 작가 권오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신앙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두 아시아계 여성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신앙의 빈자리를 예술과 욕망으로 채워 가는 과정을 그린다. 욕망과 금기, 출산과 임신중절, 가족과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탐색하고 성애와 우정이 뒤섞인 두 여성의 미묘한 관계를 담아낸다. 작가는 컬트 종교와 테러를 소재로 한 첫 장편소설 ‘인센디어리스’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존 레너드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았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조이엘, 섬타임즈, 2만2000원)=인문학을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저술가인 저자가 역사,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사실들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단서를 찾아내는 인문교양서다. 까마귀, 견우직녀, 소학, 인공지능(AI), 로또처럼 익숙한 소재에서 출발해 인간은 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지, 사회는 왜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지 풀어낸다. 영아돌연사증후군, 로또 명당, 이민자와 범죄, 마시멜로 효과 등 여러 사례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편향과 착각에 빠지는지 보여준다. 책에 실린 100편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적으로 읽히면서도 하나의 지적 지도처럼 연결된다.

페르난두 페소아 평전(리처드 제니스, 김한민·김솔하 옮김, 5만5000원)=포르투갈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평전이다. 페소아는 생전에 출간한 책은 시집 ‘메시지’ 단 한 권뿐이어서 큰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사후 수만장의 원고가 발견되면서 세계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T. S 엘리엇과 나란히 거론되는 모더니즘의 거장 반열에 올랐다. 사후 발견된 그의 원고들은 포르투갈 국보로 지정됐다. 평전을 쓴 리처드 제니스는 페소아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미국인 번역자이자 포르투갈 귀화 시민이다.

하얀 여름을 데려왔어(이세현, 위즈덤하우스, 1만7500원)=외로운 볏짚도깨비 도롱이와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이가 어느 여름날, 빗줄기에 휩쓸려 길을 잃은 조랭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조랭이는 사시사철 눈이 내리고, 얼음 과일이 열리는 만년설 과수원에서 온 눈뭉치도깨비다. 도롱이와 별똥이는 더운 날씨에 녹아내리는 조랭이를 집에 데려다주기로 하고, 셋은 향긋한 풀과 꽃을 한 아름 끌어안고 만년설 과수원에 도착한다. 눈뭉치도깨비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자 조랭이는 기쁘게 외친다. “내가 여름을 데려왔어!”

바다 여인의 선물(데니스 존슨, 김승욱 옮김, 다산책방, 1만8000원)=한 차례 전미도서상을 받고 두 차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 데니스 존슨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소설집이다. 2017년 간암으로 투병하면서 병상에서 쓴 소설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원고를 완성했다. 책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서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일상이란 삶과 죽음이 뒤섞인 시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