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구호가 논란이 되면서 청소년 사이에 놀이처럼 퍼져있는 혐오표현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장의 교사들은 교육이 필요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광주제일고는 오는 6일 오후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 교직원 등 80여명의 사과 방문을 받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이는 지난달 2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일부 야구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며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형태의 응원 구호를 외친데서 비롯됐다.
배재고는 구호를 먼저 외친 2명의 선수를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했고 동조 선수들에 대해서는 징계 방식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교사 90% “교실 내 혐오 표현 심각”…놀이가 된 혐오
선생님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놀이처럼 혐오표현을 즐기는 문화가 이번 사건을 통해 터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은 지난달 30일 배재고 야구부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내고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비하적 밈(Meme)과 혐오 표현들이 청소년들의 일상 언어문화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밈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을 모방해 만든 문구·사진·영상 등을 말한다. 학생들이 밈으로 혐오 표현을 배우면서 문제의식 없이 ‘재미’를 이유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지난해 12월~올해 1월 전국 초중고 교사 17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8%가 학교 및 교실 내 극우화된 혐오 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는 61%, ‘심각하다’ 28.8%였다.
‘학교 및 교실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는 문항에는 ‘매우 자주 있다’가 48%, ‘자주 있다’는 32.2%였다. 80.2%가 실제로 자주 목격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지난해 교사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학생들 사이 혐오표현은 심각한 수준이다. 응답자의 68%가 “5~6년 전보다 혐오표현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청소년들이 차별·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중복선택 가능)에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30%(167건)로 가장 많았다.
◆교사 90% “교실 내 혐오 표현 심각”…놀이가 된 혐오
혐오표현이 놀이처럼 소비되면서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기 어렵게 되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대부분의 혐오 표현은 피해자가 있는 문제”라며 “그런 상황에서 ‘의도가 없었으니까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들끼리만 놀고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신도 모르게 오프라인에서 말하게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피해자에게 전달된다”며 “온라인상 놀이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장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놀이처럼 쓰는 혐오표현을 제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선 전교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극우 혐오 표현 발생 시 직접 대응에 어려움을 느꼈다’는 교사가 75.2%에 달했다. 이들 중 59.9%는 ‘실질적 조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교사 대부분(95%)이 혐오표현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했지만 ‘항상 대응한다’고 답한 교사는 14%에 불과했다. 연구소는 이 같은 결과를 ‘인식-실행 간극’으로 규정하며, 교사의 인식 수준에 비해 제도적·문화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교원단체에서는 교권 강화를 통해 학생들을 훈육할 수 있도록 하거나 민주시민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교총은 “학생 간 부적절한 언행이나 행동에 대한 정당한 훈육조차 정서적 아동학대로 교원을 신고하고 악성 민원의 빌미가 되는 상황에서 교원들이 부적절한 언행을 목격하고도 소신 있게 지도하기 어렵다”며 실질적인 교권 강화의 법제화를 촉구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 1일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고 지역을 비하하는 행위는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며 민주시민교육 강화와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을 주장했다.
놀이처럼 활용되는 혐오표현을 규제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는 만큼 오프라인에서 문제가 됐을 때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홍 교수는 “놀이처럼 소비되는 혐오를 규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부장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아는 5·18 조롱만 해도 아주 많다. 규제자가 생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는데 이를 잡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려운 것을 고민하기 보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스포츠계에서 혐오표현에 대해 자체 규범을 만들고 결의·교육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게 많다”며 “중장기적으로 문화를 바꾸는 것은 필요하지만 당장 가능한 것부터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