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민주화운동 조롱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광주광역시를 찾아 공식 사과한다. 배재고 방문단은 오는 6일 피해 학교인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두 학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동반 참배한다. 광주 교육계는 해당 학생들을 단순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 교육과 관용으로 품어 안기로 결정했다.
◆ 6일 광주 방문 및 동반 참배 통한 새로운 시작
3일 전남광주특별시교육청은 배재고 야구부 소속 학생선수와 지도자 등 80여 명이 6일 오후 3시 광주제일고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배재고 방문단은 부적절한 응원 구호가 나온 경위를 설명한다.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
오후 4시부터는 두 학교 야구부와 교직원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한다. 배재고 학생들은 이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의미를 배우고 존중의 스포츠 정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잘못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5·18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광주제일고는 당초 배재고의 사과 방문을 거절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일정과 심리적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재고 선수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 출발 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수용해 방문을 최종 허락했다.
◆ 교육감 동행 참배와 올바른 역사 교육 강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광주특별시교육감도 5·18묘역 참배에 동행한다. 정 교육감은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직접 설명한다.
이를 통해 올바른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정 교육감은 사태 직후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서울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으로서 광주제일고와 광주시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정 교육감은 배재고 야구부에 내려진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책임을 묻는 과정은 교육의 원칙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학생 개인을 향한 과도한 혐오 표현은 경계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전체 학교운동부를 대상으로 차별적 표현 근절을 위한 긴급 교육을 지시했다.
김 교육감 역시 광주제일고 학생선수들을 위로했다. 그는 “이번 사안이 전국 학생선수들의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사건 경위 및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중징계 결정
배재고 야구부 학생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대회에서 상대 팀인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이는 과거 논란이 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프로모션을 연상시키는 지역 비하 발언이었다. 구호를 선창한 학생 2명은 학교 생활교육위원회에 즉각 회부됐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긴급 개최하고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는 경기 질서 문란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징계다.
결과적으로 배재고는 청룡기 몰수패를 당했으며 올 시즌 남은 전국대회에 일절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사태 발생 후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학생선수들의 일탈을 어른들의 책임으로 보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는 입장문을 통해 “기성세대가 성숙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 논란의 배경이 된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학생들의 조롱 구호에 등장한 ‘스타벅스 탱크데이’는 지난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가 진행한 프로모션이다.
행사 당일은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다. 당시 스타벅스는 ‘탱크데이’와 ‘책상의 탁’ 등의 부적절 문구를 마케팅에 사용했다. 이는 5·18의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신세계그룹은 즉각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이어 정용진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사태를 수습한 바 있다.
◆ 96년 전 광주와 배재의 끈끈한 역사적 인연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광주제일고와 배재고가 일제강점기에 맺은 역사적 인연이 온라인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 당시 광주제일고의 전신인 광주고보 학생 339명이 일제에 의해 구속되고 제적당했다.
이듬해인 1930년 배재고의 전신인 배재고보 학생들은 광주 학생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배재고보 학생 23명이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96년 전 광주를 위해 기꺼이 연대했던 배재의 후배들이 이번에는 5·18을 조롱한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광주를 찾는다.
가해자를 처벌로 내치기보다 교육으로 품어 안으려는 광주의 관용이 두 학교의 깊은 역사적 인연과 맞물려 사회에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