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표팀의 여정은 끝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월드컵의 열기로 뜨겁다. 경기장에서는 스물두 명이 뛰지만, 밖에서는 같은 색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흔드는 수천만의 마음이 함께 뛴다. 전쟁을 공부하는 사람의 눈에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깃발, 군중, 함성, 아군과 적, 영웅과 배신자. 축구와 전쟁의 언어는 놀랄 만큼 닮아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이다. 두 나라는 멕시코 월드컵 예선에서 세 차례 맞붙었고, 경기마다 폭력 사태가 뒤따랐다. 최종 플레이오프 직후 엘살바도르는 단교를 선언했고, 7월 14일 전쟁이 시작됐다. 오래 누적된 토지 문제와 이민 갈등, 여기에 언론이 부추긴 민족주의가 월드컵 예선을 도화선 삼아 폭발한 것이다. 전쟁은 나흘 만에 끝났지만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2월드컵 붉은악마 응원 모습. 연합뉴스
유고연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990년 5월 자그레브의 경기장에서 디나모 자그레브와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팬들이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충돌했다. 민족주의 정당이 크로아티아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였다. 이듬해 유고연방은 내전에 돌입했고, 이 폭동은 훗날 참혹한 내전의 서막으로 기억됐다. 국가가 무너지기 전, 사람들의 마음은 축구장에서 먼저 갈라졌다.
스페인에서 축구는 억압된 정체성의 피난처였다. 내전 이후 프랑코 체제가 카탈루냐의 언어와 정체성을 통제하던 시절,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은 카탈루냐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과 자존심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르셀로나가 ‘클럽 그 이상’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구는 스페인을 하나로 묶는 국민 스포츠였지만, 동시에 스페인이 하나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한국인에게도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이었다. 특히 한·일전은 식민지 경험과 민족적 자존심이 뒤섞이며,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전쟁과도 같은 승부였다. 2002년 월드컵은 스포츠가 공동체를 얼마나 강하게 묶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 속에서 한국 사회는 세대와 지역, 계층을 넘어 하나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미식축구다. 미식축구는 경기 구조 자체가 전쟁을 닮았다. 100야드의 땅을 놓고 공격팀은 전진하고 수비팀은 저지한다. ‘라인 오브 스크리미지’는 전선이고, ‘쿼터백’은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며, ‘라인맨’들의 충돌은 참호전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블리츠’라는 전술 용어는 독일군의 전격전(Blitzkrieg)을 연상시킨다. 네 번의 기회 안에 10야드를 전진해야 하는 규칙 역시 제한된 자원으로 작전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전장의 논리와 닮았다. 말 그대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다.
그러나 전쟁과 축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쟁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축구는 인간의 투쟁 본능을 규칙 안에 담아낸다. 아무리 전쟁을 닮아도 축구는 규칙 안에서만 허용되고, 경기가 끝나면 악수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축구의 위대함은 전쟁을 닮은 인간의 본능을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승화시킨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