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에스에이(USA·미국)! 유에스에이!”
수시간의 기다림과 악천후, 대피 사태까지 겪은 끝에 미국 워싱턴 상공에 불꽃이 솟아오르자 거대한 함성이 도시를 에워쌌다.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는 뇌우를 동반한 강풍으로 두 시간 가까이 연기돼 자정부터 시작됐고, 날을 넘겨 진행됐다. 악천후 속에서도 어느 때보다 화려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였지만, 모든 미국인의 축제여야 할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가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띠면서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은 한낮 섭씨 39도까지 치솟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수천명의 시민은 도시 한복판의 ‘내셔널 몰’로 모여들었다. 독립기념일 행사를 주관한 ‘프리덤 250’ 측은 올해 불꽃놀이가 사상 최대 규모(85만발)로 치러져 기네스북에 오르도록 할 것이라고 홍보한 바 있다.
긴장이 고조된 것은 오후 7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워싱턴 상공에 번개가 관측되면서 경찰은 내셔널 몰에 모인 수천명에게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제퍼슨 기념관 등 인근 건물로 대피를 명령했다. 폭염 속에서 몇 시간 동안 보안검색 줄을 서서 내셔널 몰에 진입하려 했던 이들 중엔 행사장을 떠나길 거부하는 이도 보였다. 최근 워싱턴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던 군용기 축하 비행도 이 시점부터는 모두 취소됐다.
오후 9시 흩뿌리던 빗방울이 점차 거세졌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쳤다. 당초 9시 예정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11시로 미뤄졌다는 속보가 나오자 자리를 정리하는 이들이 일부 눈에 띄었다. 그즈음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폭풍은 어떤 상황에서든 행운을 가져온다. 행사를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우린 그것(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새벽 2시가 되든, 지금부터 한 시간 내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오후 9시45분 빗속에서도 보안검색대가 다시 열렸고, 10시30분이 넘자 빗줄기가 잦아들면서 공연이 재개됐다. 가수 리 그린우드가 트럼프 대통령의 주제가와 같은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부른 뒤 트럼프 대통령을 호출하자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멜라니아가 무대 위에 올랐다. 오후 11시15분, 대피 명령이 있은 지 4시간이 넘은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연호했다.
트럼프 연설이 끝난 뒤 기다리던 불꽃은 밤 12시에 하늘로 솟아올랐고, 약 40분간 85만발이 하늘을 수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 행사를 ‘트럼프 집회’로 기획해 왔다. 2016년 미국 건국 250주년 준비를 위한 초당적 기구가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배제됐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여러 주 정부는 이번 행사에 대표단 파견을 거부했고, 공연 예정이던 가수들은 정치색이 짙다는 이유로 참가를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불꽃놀이에서 라이브 음악 무대는 군악대와 소속 군인들이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이었던 지난달 14일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백악관에서 종합격투기 경기가 개최되고, 워싱턴에 대관람차가 설치된 데 이어 8월에는 자동차 경주가 진행되는 등 건국 250주년의 취지와 맞지 않는 행사가 계속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75%, 공화당 지지자의 50%가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나치게 정치화됐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워싱턴 인근 주민들도 워싱턴의 불꽃놀이를 거부하고 지역 불꽃놀이 축제에 참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폴스처치에 거주하는 미리아(60)는 “‘트럼프 파티’를 보느니 주민들과 보내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