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조 벌 듯”… 전쟁 특수 노린 정유 4사의 ‘유가 담합’

檢,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법인·직원 무더기 기소

미국·이란 전쟁 직후 담합을 통해 유가를 폭등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내 정유사와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 정유사의 담합 행위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총 26조원대에 달한다고 봤다. 아울러 검찰은 유가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등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국내 정유 4사(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를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직접적인 담합 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된 HD현대오일뱅크의 가격결정부서 부서장은 구속기소했고, 같은 회사 책임매니저와 법무실장, GS칼텍스의 국내영업 부문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국내 정유시장은 정유 4사의 점유율 합계가 98.6%에 이르는 ‘완전 과점시장’이다.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브리핑실에서 미국·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부서 책임자들은 이란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담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정유사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검찰은 나머지 2개사(GS칼텍스·에쓰오일)가 두 회사의 담합 가격을 ‘추종’한 점을 감안하면 경쟁 제한 효과는 26조원 상당까지 는다고 부연했다.

 

앞서 검찰은 이란 전쟁 발발 직후 유가가 이례적으로 폭등하자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전쟁 발발 당일 40%가량 폭등했는데,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비교할 때 비정상적 흐름이다. 검찰은 이란 전쟁 발발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해둬 가격이 급등할 이유가 없었던 점도 지적했다.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이 전쟁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SK에너지 임직원과 가격 정보를 교환한 정황도 드러났다. 나 부장검사는 “전쟁 직후 담합은 일시적 일탈이 아닌 정유사들의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임을 파악했다”고 했다.

 

나 부장검사는 “상식적으로 접근해도 국내로 원유를 들여오고 정유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가격이 폭등할 수 있나, 이런 기초적 의문점에서 시작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유사들의 회계자료도 분석했다”며 “전쟁 상황이 정유사들에 이익이 된다는 점이 회계자료로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입수한 정유사 직원들의 대화방에는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등의 대화가 오갔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추종 행위 역시 경쟁 질서를 교란하는 전형적인 의식적 병행행위에 해당하지만,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엔 포함되지 않아 담합 행위의 직접적인 기소 범위에선 제외했다. 다만 유가 상승 원인으로 꼽히는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과 관련해선 4개사 모두를 재판에 넘겼다.

 

그간 정유 4사는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거래상 우월적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결정·통보한 가격으로 석유 전량을 해당 정유사에서만 구입하도록 해왔다. 주유소들이 가격을 비교해 더 저렴한 유통 경로로 석유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등 각종 불이익을 주는 내용의 계약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음에도 지금까지 내려온 관행이다. 나 부장검사는 “향후 산업통상부 등 다른 기관들과 협력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데 지원·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실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을 포착하고 두 회사 직원을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또 정유사 3곳이 산업통상부에 석유제품 공급가를 실제 인상액보다 낮춰 허위로 보고한 사실을 확인하고 산업통상부와 추후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협력할 방침이다. 나 부장검사는 “담합 행위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유가를 교란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