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에선 어쩌다 한 번씩 단원과 관객 모두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가는 지휘자를 만난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로베르토 아바도 음악감독의 제265회 정기연주회가 그러했다. 올해 1월 취임한 아바도는 음악감독으로서 세 번째로 지휘봉을 잡은 이 연주회에서 자신의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괴테 문학에서 출발해 베토벤에 이르는 프로그램 구상, 그리고 자신의 해석이 가리키는 곳으로 악단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의 독려가 인상적인 무대였다.
아바도는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카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뮌헨 방송교향악단 등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현재 볼로냐 시립극장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마에스트로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취임 당시 밝힌 그의 청사진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바도는 3년 임기 동안 ‘멘델스존과 슈만’, ‘괴테와 음악’, ‘셰익스피어와 음악’을 주제로 시즌을 짜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괴테의 연작시에서 출발한 멘델스존의 서곡, 괴테 소설 속 인물을 추모하는 슈만의 합창곡,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7번. 낭만주의의 원천인 괴테를 매개로 초기 낭만주의 두 거장을 배치하고, 그 정신적 시원으로 여겨지는 베토벤으로 귀결시킨 이날 프로그램은 아바도가 표방해온 ‘이성적 낭만’, 즉 구조 속에 감정을 담는 음악 만들기의 축소판이었다.
공연은 1부 첫 곡부터 연주장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깊은 고요가 물 위를 지배하고, 바다는 아무 흔들림 없이 누워 있다’로 시작하는 괴테의 동명 연작시 두 편에서 착안한 멘델스존의 연주회용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다. 현악의 정적인 화음 위에 관악과 팀파니가 더해지며 항해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국립심포니의 연주는 오프닝 이상의 관객 집중을 이끌어내는 호연이었다.
이어진 무대는 슈만의 합창곡 ‘미뇽을 위한 레퀴엠’. 연주 시간 13분 남짓한 소품이지만 독창과 합창,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대편성이어서 국내에서 실연을 접하기 힘들다.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리톤 김태한이 독창을 맡고 수원시립·위너오페라·월드비전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특히 괴테 원작에서 합창단과 문답을 주고받는 소년들 대목을 맡은 월드비전합창단 소속 앳된 음색의 여학생 4명이 지휘자 바로 옆에서 천상의 음성을 들려줬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순수한 영혼의 구원을 노래한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아바도는 낭만적인 음악으로 채운 1부에 이어 2부에선 낭만주의의 뿌리로 통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자신의 이데아를 여실히 드러냈다. 1악장에서 예열된 무대는 거의 쉼 없이 이어진 2악장의 장중한 도입부부터 활짝 만개했다. 특히 종반부에서 조각난 주제 선율이 현악군과 목관군 사이를 문답하듯 오가다 악장 첫머리의 화음으로 되돌아가 닫히는 대목에서 아바도는 악기군별 입체감을 뚜렷이 살려냈다. 2악장을 마친 뒤 잠시 숨을 고른 아바도는 3, 4악장을 단숨에 이어가며 한껏 고양된 정서를 폭발시켰다.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지휘자의 의지와 여기에 호응하려는 단원들의 진심이 객석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무대였다. 열띤 박수에 여러 차례 커튼콜로 답하던 아바도는 눈물이 난다는 제스처까지 하며 연주회의 감동을 객석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