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의 부실 수사 및 유착 의혹과 관련해 당시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이 긴급체포됐다. 현직 경찰인 피의자 부친이 수사팀의 묵인 아래 핵심 증거를 훼손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 초동수사팀장 긴급체포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은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취임 후 첫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의 초동 수사 논란에 대해 “유구무언”이라며 고개를 숙이면서 “엄정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지휘 직후 광주경찰청은 즉각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광주청은 6일 오전 7시 11분쯤 장윤기 사건을 담당했던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을 증거인멸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아울러 기존 형사 라인을 전면 배제하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광주청 수사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22명 규모의 전담팀을 반부패 및 경제범죄수사대 중심으로 편성했다.
◆ 피의자 부친과 수사팀 유착 의혹 및 증거인멸 전말
이번 수사의 핵심 쟁점은 현직 경찰 간부인 피의자 장윤기(23)의 부친 장 모 경감과 초기 수사팀 간의 유착 의혹이다.
사건 발생 직후 수사팀은 장윤기를 구속하면서 부친에게 피의자 원룸 주소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넘겨준 것으로 확인됐다.
비밀번호를 확보한 부친은 이튿날인 5월 8일 원룸에 들어가 핵심 범행 동기를 밝힐 수 있는 증거물인 훼손된 성인용품(리얼돌)을 직접 절단해 폐기했다.
또 본가에 보관되어 있던 장윤기의 과거 휴대전화들도 소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의 부실 압수수색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 차량 수색 과정에서 트렁크에 숨겨진 과거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발견하지 못하고 차량을 반환했다.
메모리카드는 검찰이 보완수사 단계에서 재압수수색을 통해 이를 뒤늦게 확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식 보고서 역시 송치 나흘 뒤 회신 받았으나 실무자 실수로 누락되어 지난 2일에야 검찰에 지연 송부됐다.
형법 제155조 제4항에 따르면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본인을 위해 증거인멸죄를 범할 경우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친족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이는 친족 간의 유대 관계를 고려해 적법행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법적 취지다. 하지만 현직 경찰관인 부친이 수사 기밀을 이용해 직무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평가된다.
홍 본부장 역시 “피의자 부친이 친족 처벌 특례 조항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수사 과정에서 특수한 상황 때문에 예외 조항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정리해 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15분 미행과 열린 차량 뒷문…검찰이 밝힌 성범죄 목적
이러한 가운데초기 경찰 수사와 달리 검찰은 보완 수사를 통해 이 사건이 철저히 계획된 성범죄 목적의 살인임이 드러났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0시 10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에서 귀가하던 고등학생 이채원(17)양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장윤기는 자가용을 이용해 1.2km 거리를 약 15분간 미행했다. 이후 인적이 드문 갓길의 대형 화물차 앞에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숨겨 세운 뒤, 뒷좌석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저화질 폐쇄회로 영상을 분석한 검찰은 장윤기가 이 양의 등 뒤에서 목을 감아 제압하고 차량 쪽으로 끌고 가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 양이 “살려 달라”며 저항하자 장윤기는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고, 비명을 듣고 달려와 제지하던 남고생에게도 119 신고를 부탁하는 척하다 돌연 공격해 중상을 입혔다.
검찰은 차량 뒷좌석 외부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과 열린 차량 문을 근거로 삼아, 피해자가 여성인지 몰랐고 사는 게 재미없어 데려가려 했다는 장윤기의 진술을 전면 배척했다.
◆ 직장 동료 감금 및 계획범죄 정황
장윤기의 범행은 우발적 사고가 아닌 연쇄적인 계획범죄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 양을 살해하기 이틀 전인 5월 3일, 장윤기는 직장 동료인 20대 여성 A씨를 13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A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 타 지역으로 피신했음에도, 장윤기는 휴대전화 유심칩을 제거해 위치 추적을 피한 채 30시간 동안 A씨의 거주지와 직장 일대를 배회했다.
경찰이 발송한 스토킹 경고 문자도 소용이 없었다. 또한 고교 시절부터 주변인들에게 죽기 전에 여성을 차로 납치하겠다는 발언을 반복해 온 사실도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 강간 등 살인죄 적용 여부와 향후 재판 전망
장윤기는 현재 성폭력처벌법 위반(강간 등 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첫 재판에서 장윤기 측은 이 양에 대한 성범죄 목적 범행 동기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만 인정했다.
오는 13일 광주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리는 다음 공판의 최대 쟁점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죄의 적용 여부다.
검찰은 확보된 영상과 혈흔, 과거 대화 내역 등을 통해 성범죄 목적을 완벽히 입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재판부가 성범죄 목적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피의자의 형량은 극명하게 갈린다. 형법상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만약 성폭력처벌법에 따른 강간 등 살인죄가 인정될 경우, 유기징역이 배제되고 오직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만 처벌받게 된다.
장윤기가 성범죄 의도를 끝까지 부인하는 이유 역시 이 같은 중형을 피하기 위한 법적 전략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