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간의 삶에서 명예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의 언행이 죽은 다음에도 대대로 전해진다는 진리가 담겨 있다. 코앞의 상황이나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먼 미래 자신의 이름이 짊어질 명성을 고려하라는 충고다.
하지만 권력을 움켜쥔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미래의 명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기념물들을 권력을 동원해 만들어 후손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강요하려는 유혹에 쉽사리 빠져든다. 특히 ‘마초’ 스타일의 리더일수록 승리를 상징하는 개선문이라는 호전적 기념물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 미국에서는 독립선언 2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치러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워싱턴의 기념물 사업들이 주목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세계 최고·최대 규모의 개선문을 알링턴 국립묘지와 링컨 기념관 사이에 짓겠다는 계획이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조국을 위해 싸우다 희생한 장병들이 묻힌 기억의 장소다. 링컨 기념관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국립묘지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축에 거대한 개선문을 세우는 일이 21세기에 적절한지는 차치하고라도, 수도 중심에 세우는 국가 기념물의 의미가 황당하다. 기자가 “누구의 개선(凱旋)이냐”, 즉 누가 전쟁에서 승리해 깃발을 휘날리며 귀환하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나(Me)’라고 답했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개선문의 높이는 76m인데, 미국식 도량형으로는 250피트로 독립선언 25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를 꿰맞췄다. 사실 트럼프가 원한 건 세계 최고 높이의 기념물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선문은 높이 50m, 김일성 70세 생일을 기념해 만든 평양의 개선문은 높이 60m 수준이다.
파리의 개선문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승승장구하면서 프랑스 군대의 승리 행진을 위한 기념물로 계획되었다. 물론 조국 군대를 빙자해 권력자 나폴레옹을 기념하겠다는 목표는 개선문 착공식이 1806년 나폴레옹 생일에 이뤄졌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념물이 완성된 시기는 1821년에 나폴레옹이 죽고도 한참이 지난 1836년 왕정체제에서였다.
딱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할 일은 없었으나 개선문과 유사한 기념물을 즐겨 만든 것은 북한이다. 1982년 앞서 언급한 평양 개선문을 완공하여 트럼프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게 되었고, 2001년에는 김정일이 높이 30m 너비 60m 규모의 통일기념탑을 아치형 개선문의 모양으로 세웠다. 아버지 김정일이 세운 이 ‘통일탑’은 아들 김정은이 2024년 ‘남북은 서로 다른 민족’이라며 부숴 버렸다. 이처럼 개선문의 정치에는 건설뿐 아니라 파괴도 중요하다.
워싱턴의 개선문이 실제로 지어질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반적 도시계획의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추진했기에, 소송이나 정치 상황의 변화로 중도에 폐기될 가능성도 크다. 불행 중 다행은 트럼프가 역사에 무지하다는 점이다. 하마터면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파리의 개선문을 조롱하려고 베를린에 지으려 했던 높이 120m의 황당한 기념물을 재현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 권력자의 망상은 끝이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