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선수들… “야구 떠나서 인성 중요성 깨달아” 눈물 [배재고 사태]

광주일고 찾아 사과한 배재고

“마음의 상처 드려” 사과문 낭독
광주일고 교장 “어깨 펴라” 위로
선수단, 5·18민주 묘역도 참배

서울·전남광주교육감도 동행
민주시민교육 대폭 강화 추진

“마음의 상처를 드려 죄송합니다.”

 

6일 광주제일고(광주일고)를 찾은 배재고 야구부 선수대표는 눈물로 지난달 29일 청룡기 야구대회에서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 선수대표는 사과문을 읽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저희 팀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배재고 야구부 선수(왼쪽)가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에게 사과문을 전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대형버스 3대로 광주일고를 찾은 배재고 야구부 선수와 학교 관계자, 학부모들은 선수대표가 사과문을 읽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재고 야구 감독은 “지도방식이 올바르지 못해 부끄럽다”고 했다. 90도로 인사를 한 배재고 교장은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화합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일고는 담담하게 배재고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광주일고 교장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라고 위로했다. 그는 “화합의 몸짓은 충분하다”며 “한순간의 실수로 역사와 전통이 부정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은 이어 국립5·18민주묘역으로 이동해 오월 영령들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 자리에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도 동행해 교육적 치유의 의미를 더했다. 당초 배재고는 지난 1일 방문 사죄를 타진했으나 광주일고 측이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과 기말고사 기간 등을 이유로 재고를 요청하면서 이날 방문이 성사됐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이 광주제일고에 전달한 자필 사과문. 서울시교육청 제공

앞서 배재고 야구부는 지난달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경기에서 과거 신군부의 진압 작전 등을 연상시키는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비극적 역사를 비하하는 구호를 외쳐 큰 공분을 샀다. 이 사태로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전정지’라는 무거운 징계가 내려진 가운데 이날 성사된 사죄 방문과 참배가 향후 징계 수위 완화나 청소년 선수들의 구제 조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 교육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용기는 소중한 가치”라며 “오늘의 만남은 단순한 사과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뜻깊은 교육의 과정이자 민주주의를 배우는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동참한 정 교육감도 “학생들이 진심으로 성찰하고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적 회복을 전개할 것”이라며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는 용기 그리고 이를 포용과 넓은 마음으로 맞아주는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학생들이 평생 가슴에 품어야 할 민주 시민의 가치”라고 화답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전체 운동부를 대상으로 인권 및 건전한 응원 문화 조성을 위한 전수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방문 등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 종합계획을 다음 달 중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전남광주교육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회성 면피용 대응을 넘어 역사의식 왜곡을 바로잡을 구조적 체질 개선에 고삐를 죈다. 특별법에 담긴 민주시민교육 특례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당’(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학교 현장에서도 헌법교육과 참여형 수업, 지역 역사 자원을 활용한 ‘민주주의 현장 교육’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교육계 전반의 목소리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교총, 전교조, 서울교사노조 등은 최근 성명을 통해 사건 직후 급조되는 특별 교육이나 형식적인 기존 예산 투입만으로는 고착화된 또래 내 혐오 문화를 막기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특정 학교의 일탈에 대한 처벌을 넘어 전국 교육 현장의 역사·인권 가치관을 대전환하는 실질적인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