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필수·공공의료(지필공)를 강화하기 위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이 시행 1년이 지나도록 비수도권 지역의 의료 인력난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정주 여건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전남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은 올해 4월 전남도에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에 새롭게 참여하기로 했으나 2개월 만에 철회를 통보했다. 공공의료병원인 순천병원은 산업재해 환자들의 요양 기능을 겸한 종합병원이다. 시범사업으로 전문의 2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지원자가 없어 최종 채용은 불발됐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인력 수급을 다방면으로 해 보고자 했으나 ‘전문의 자격 취득 5년 이내’ 등 요건이 문턱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전남도 관계자도 “순천병원 원장이 지역필수의사제에 굉장한 열정을 보였으나, 막상 채용이 쉽지 않았던 듯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이 시범사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에게 월 400만원의 지역 근무 수당과 주거비 등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제도다. 수당은 지역 의료기관과 5년 이상 장기 근무 약정 시 해당 전문의에게 지급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8개 과목 5년 차 이내 저연차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다. 올해 지원예산은 추가경정예산 9억1700만원을 포함해 총 37억1100만원이다.
순천병원이 올해 4월에서야 시범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지난해 7월 애초 참여 의료기관이었던 전남도 목포시의료원과 순천의료원에서 채용이 불발된 탓이다. 두 개 의료원에서 지원자가 없자 전남도로서는 새 의료기관을 구해야 했다. 시행 1년을 맞은 4개 지자체(강원·경남·전남·제주) 중 정원을 채운 곳은 강원이 유일하다.
다만 전남도 측은 목포중앙병원과 목포기독병원에서 신규 채용을 진행해 복지부에 승인 요청을 해둔 상태로, 미달 상황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경남과 제주는 2명씩 미달한 상황이다.
문제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에서도 지역 내 대형병원 위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현재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로 근무 중인 89명의 의사 중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는 인원은 2명(2.2%)뿐으로 확인됐다. 나머지는 전부 상급 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정부가 지역·공공의료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예산을 투입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지역·공공병원의 핵심축 중 하나인 지방의료원이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 분만 뺑뺑이’로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된 산부인과 전문의 부족 문제도 시범사업으로 타개하긴 역부족이었다.
산부인과는 시범사업 지원 대상인 8개 과목에 포함돼 있으나 최종 채용된 산부인과 전문의는 89명 중 경남에 있는 경상국립대학교병원에 근무 중인 2명뿐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은 내(36명)·외과(10명)에 쏠려 있는 실정이다.
◆“월 400만원, 유인책 될 수 없어”
복지부 산하 의료혁신위원회 위원인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은 “지방의료원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다양하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결국 돈을 주는 변형된 형태일 뿐”이라며 “그런데 민간병원이든 대형병원이든 지방이면 다 지원받는 만큼 지역 내에서도 대형병원에 지원자가 집중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지방의료원이라는 지역 공공병원을 살리는 데 지역필수의사제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가 전문의 자격 취득 5년 이내의 경력자가 지원하는 만큼 단순한 수당 추가 지급이 큰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윤정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자격 취득 5년 이내 전문의는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하는 의사이고, 본인의 경험과 역량을 더 쌓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라면서 “이들이 역량을 쌓으려면 환자가 다양하고 많아야 하는데 지역 의료 환경은 환자도 적고, 서로 돕는 의료진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매달 400만원가량 더 준다는 건 전혀 유인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조 회장은 “젊은 의사에게 환경이 더 좋지 않은 지방의료원은 지역필수의사제로 지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찾아오는 환자도 더 적고, 의료 인력이 열악해 배울 선배도 없다. 의술은 경험하며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작업인데 지방의료원에서 그게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복지부, 정주 여건 강화에 초점
정부는 최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행 지자체를 추가 선정했다.
2026년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해 올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에 참여할 5개 광역 지방정부(부산·대구·울산·충북·전북)를 지난달 최종 확정했다. 5곳의 의료기관은 10월부터 채용에 나선다. 올해 3월 추가 선정된 충남·경북은 정원 20명씩을 배분받아 이달부터 채용에 돌입한다.
이들 역시 목표 인원만큼 채용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0월 개원을 앞둔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은 인력 수급을 위해 시범사업 참여를 검토 중이다. 조 과장은 울산병원과 관련해 “산재병원도 공공의료기관으로 지방의료원만큼 경직적인 인건비 구조를 가져 사정이 더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의사들이 계속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역 의료 현장은 의사를 비롯해 간호사까지 인력 구성이 열악하며, 의료의 질 관리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근본적 문제인 지역 소멸에 따른 삶의 질 차이도 너무 크다”고 말했다. 즉 젊은 의료인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복지부는 지자체들이 정주 여건 인센티브를 강화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당장 ‘월 400만원’ 지원금을 상향하는 식으로 혜택을 확대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경남은 자녀 양육·교육지원금(1인 월 50만원)이 제공되고, 제주는 생활 밀착형 복지 지원(복지 포인트 등)과 연구 및 업무환경 지원(근무시간 조정 등)을 내세우고 있다. 정원 미달이 지속할 경우 예산 불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지자체별 인원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원을 다 채운 강원은 올해 초 추가 정원 배분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다”며 “지역에 따라 정원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 곳은 더 늘리는 방식으로 최대한 예산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