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하며

‘배재고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다 함께 고민해야
진심 어린 사과와 포용, 미래 밝힐 이정표 되길

서울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1회전에서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이 보인 5·18 비하 응원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태 직후 한 시민단체는 “특정 집단과 일부 언론이 학생들을 겨냥해 과도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며 인권 침해 중단을 요구했다. 심지어 일부 야당 의원은 화환을 보내거나 유튜브에 출연해 이 학생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는 이러한 성인들의 언어와 행동이 학생들을 통해 나타난 측면이 크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갈등을 동력 삼아 기생하는 분열의 정치를 방치해 왔다.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혐오와 조롱이 교실 안에서 난무하는 동안 이를 제지하려는 사회적·교육적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 와중에 혐오가 놀이와 밈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조롱, 편견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되게 하려면 사태 발생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온 사회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첫째, 혐오 등의 표현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기준과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고 증오를 선동하는 말까지 무제한으로 용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언론, 학부모, 학생, 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대대적인 국민대토론회를 정례화하여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선을 공론화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혐오와 차별을 유통하는 행위에 대해 실효성 있는 법적 제재를 가하는 입법 조치를 단호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글로벌 SNS와 대형 플랫폼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훨씬 무겁게 물어야 한다. 현재의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분노와 갈등을 자극하고 방조할수록 기업의 수익이 극대화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혐오·차별 게시물에 대한 신속한 삭제와 노출 제한, 반복 유포 계정에 대한 강력한 제재,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한 공개, 플랫폼의 정기적인 투명성 보고를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플랫폼의 위험 완화 책임을 묻고, 호주가 청소년의 안전을 위해 플랫폼의 사전적 책임을 강제하는 글로벌 추세에 우리도 발을 맞춰야 한다.

셋째, 교사의 교육권과 생활지도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신고와 고소·고발에 대해 교사가 개인적으로 수사와 소송의 전 과정을 감당하는 구조로는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교육 관련 분쟁의 경우 초기 단계부터 국가나 교육청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법적 대응을 도맡는 ‘국가소송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사가 차별과 혐오, 올바른 역사관을 당당히 가르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교육 지침과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범위를 전향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교사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둔 상태에서는 살아있는 시민교육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수업 내용의 정치적 중립성이 모호할 때 교사가 연방 특별검사관실(OSC) 같은 전문 기관에 유권해석을 요청할 수 있으며, 편향성 논란이 생기면 기관 차원에서 이를 중재한다. 우리도 가칭 ‘교원 정치활동 가이드라인 센터’와 같은 상설 기구를 마련한다면 편향 교육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도 교실 내의 차별과 혐오를 엄정하게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배재고 야구 선수를 비롯한 관계자 80여명이 광주일고를 방문해 사과하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반성을 표했다. 함께한 광주와 서울 교육감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이제 훌훌 털고 학업과 운동에 전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진심 어린 사과와 이를 품어 안은 포용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성숙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의 한 교수는 한국 사회와 언론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두고, 더 거대한 혐오 범죄 앞에서도 침묵하는 자국과 비교하며 부러움을 표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끓어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곤 했다. 이번만큼은 혐오와 차별을 가벼운 놀이로 소비하지 않는 사회, 갈등을 수익모델로 삼지 않는 사회, 그리고 교사와 부모가 교단과 가정에서 당당하게 정의를 가르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 공동체가 무거운 책임감으로 연대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