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던대 한국학자 3명 큰 결실 1960년대 포스 교수 초벌 번역 제자와 제자의 제자가 완성시켜 “수천년 걸친 한국 문화 알려지길”
한민족의 자주적 역사관과 정체성 형성의 뿌리가 된 고려시대 역사서 ‘삼국유사’를 영문으로 완역한 책이 처음 발간됐다. 이전에도 해외 독자들에게 삼국유사를 소개하는 영문 번역서가 있었으나, 상세한 주석과 함께 삼국유사 전체를 망라한 영문 완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일(현지시간) 유럽 한국학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하와이대학교 출판부는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방대한 주석을 달아 영문으로 옮긴 ‘한국 삼국의 흔적’(Vestiges of the Three Kingdoms of Ancient Korea)을 출간했다.
렘코 브뢰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 한국학과 교수가 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레이던대에서 ‘삼국유사’ 영문 완역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레이던=연합뉴스
이 책은 네덜란드 레이던대 소속 한국학자 3명이 60여년간 쏟은 노력의 결실이다. 스승이 남긴 초벌 번역이 제자에게, 다시 그 제자에게 이어졌다.
출발점은 레이던대 한국학과 설립의 주역이자 유럽 한국학의 선구자인 프리츠 포스(1918~2000) 교수였다. 포스 교수는 1954~1955년 독일의 동아시아학 학술지에 ‘삼국유사’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이 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60년대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삼국유사’ 영문 완역과 주석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연구하던 시기에는 자료 접근과 연구 여건에 한계가 컸다. 포스 교수는 세상을 떠나며 제자인 바우데베인 발라번(79) 레이던대 명예교수에게 남은 작업을 부탁했다.
유럽한국학회 회장을 지낸 한국학자인 발라번 교수는 여러 제약으로 스승의 유언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의 제자이자 고려시대 연구자인 렘코 브뢰커(54) 교수가 합류하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초벌 번역을 다듬고 방대한 주석을 보완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은 약 16년간 작업을 이어간 끝에 완역본을 완성했다.
브뢰커 교수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삼국유사’는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고전”이라며 “이 책은 한국인에게 서양의 성경에 비견될 만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그 자체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라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국이 수천년에 걸쳐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일구고 지켜왔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