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고 소름 돋는 ‘아빠 찬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우리 언론에서 ‘아빠 찬스’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이 계기가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 전 대표의 자녀가 부친의 도움 덕분에 또래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스펙’을 쌓았고, 그 결과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이 가운데 몇몇 스펙은 법률 위반이란 의혹이 제기되며 심지어 검찰까지 나서 수사에 착수했다. 조 전 대표는 일단 법무장관에 임명됐으나 검찰의 공세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취임 후 1개월여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광주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가 지난 5월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아빠 찬스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전 이명박(MB)정부 시절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례야말로 아빠 찬스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준다. 2008년 2월 당시 유명환 주일 대사가 MB정부의 첫 외교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그의 딸이 외교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미담처럼 소개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민간 통상 전문가 확보를 위해 뽑은 인원”이라며 “영어에 능통하고 경력도 관련 업무에 맞아 선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유 장관 딸이 외교부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부당한 특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외교부는 만신창이 신세가 됐고, 중견 외교관들은 무슨 비리 집단처럼 매도를 당했다. 결국 유 장관은 2010년 9월 자진 사퇴했다.

 

6·3 지방선거 당시 투표 용지 부족 사태로 요즘 국회 국정조사와 검경 수사를 받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는 아빠 찬스의 ‘끝판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헌법상 독립 기구인 선관위는 입법·행정·사법 3부와 동등한 지위에 있다. 평소 행정부 산하 감사원이 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불법 선거운동 조사권을 지닌 선관위 직원들은 국회의원에게도 ‘갑’(甲)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조차 선관위 앞에선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선관위는 직원들 자녀 또는 친인척이 선관위에 입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종의 ‘가족 회사’로 변질했다. 어느 전직 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의 아들은 조직 안에서 아예 ‘세자’(世子)로 불리며 특별 관리를 받았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홍석기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부 화상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 수사팀의 ‘봐주기’ 수사 정황이 불거진 직후 홍 본부장은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며 “이번 건은 최선을 다해서,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1

광주에서 17세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의 행각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장의 부친은 현직 경찰 간부(경감)인데 아들이 범죄를 저지른 뒤 경찰 수사팀 도움으로 직접 증거를 인멸했다. 수사팀은 장에 대한 수사 상황도 실시간으로 그 아버지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심지어 장이 범행 당일 운전한 SUV 차량에서 피해자 혈흔이 발견됐는데도 이를 압수하는 대신 부친에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경찰 간부 자녀에게 당하면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기는커녕 되레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릴 판’이란 두려움이 들 법한 대목이다. 특혜 채용 정도는 그저 ‘애교’가 아닌가 싶을 만큼 섬뜩하고 소름 돋는 아빠 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