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기사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법원, 노동자성 인정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이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별도의 입법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며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것보다 근로기준법 규정을 탄력적으로 해석해 근로관계를 실질에 맞게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배달 오토바이 사진.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음. 연합뉴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1부(재판장 이지영)는 배달기사 A씨가 모바일 배달 플랫폼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및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3일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5월 회사와 ‘배송대행 업무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회사는 같은 해 12월 A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회사가 대여해줬던 배달조끼와 오토바이 등 반납을 요구했다. A씨는 이에 해고무효 및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가 보수를 목적으로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종속적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한 이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종래 근로기준법이 상정한 전형적인 근로자, 즉 정해진 근무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사용자를 위해 종속적인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형태로 회사에 노무를 제공한 점은 인정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종국적으로는 A씨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무 제공 관계에 더 부합하는 별도의 입법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더라도,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만연히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개별 사안에서 근로기준법 규정의 탄력적인 해석을 통해 근로관계를 실질에 맞게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배달 기사는 회사 앱을 통해서만 배달 업무를 수행한 점, 업무 내용과 보수 산정 기준이 회사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 점, 업무 수행 과정에서 회사의 상당한 지휘·감독이 수반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배달 기사는 회사와 무관한 독립사업자로서 능동적으로 고객을 모색하기 위한 방편으로 회사의 플랫폼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며 “회사 앱을 통해서만 배달 주문을 수락하고 배달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에서 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된다”고 봤다.

 

회사 앱의 알고리즘이나 관리직의 지시로 회사 방침대로 배차가 이뤄지는 등 배달 기사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회사의 상당한 지휘 및 감독이 수반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관리직은 라이더가 사용하는 앱에 기록되는 GPS 정보와 연동된 관리자용 프로그램의 ‘지도관제’ 메뉴를 통해 실시간으로 라이더의 현재 위치 정보 등을 조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회사의 관리직은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배달 기사에게 배달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음을 알리며 배차 취소를 권고하거나 출근을 독려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윤 창출 방식 등 측면에서도 A씨를 독립사업자로 볼 징표가 인정되지 않고, A씨가 받은 보수는 배달이라는 노무 제공에 대한 대가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기본급이나 고정급을 받지 않은 것은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한 노무 제공의 특성에 기인하는 점, 배달 기사에게 지급되는 배달요금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계산식의 각 항목에 따라 결정되는 점 등을 들어 “A씨가 지급받은 보수는 건별로 지급되는 대가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A의 근로에 대한 대가적 성격을 가진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며 해고일부터 복직일까지의 임금을 산정해 지급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