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태어났어도 안심 못하나… 신생아 사망이 드러낸 전북 의료 허점 [사건수첩]

전문의 공백·고위험 분만 증가
병상 부족 겹쳐 도민 생명 위협
평가 1등급과 현장 현실 괴리도

최근 전북 전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적기에 전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진 사건을 계기로 지역 신생아 의료 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 과실 여부는 경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사안이지만, 이번 사건은 신생아 전문의 부족과 권역별 의료 불균형, 고위험 분만 증가 등 복합적인 문제가 맞물리면서 응급 신생아의 생명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지역 의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적기에 전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진 사건을 계기로 지역 신생아 의료 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8일 전북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전주의 한 여성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출생 직후 청색증과 심박수 저하 증상을 보여 상급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부모는 병원의 부주의를 주장하며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고,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포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개별 의료기관의 대응을 넘어 지역 신생아 의료 체계 전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당시 전북에서 신생아 집중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사실상 전북대병원과 예수병원, 원광대병원 정도였다.

 

문제는 전북대병원의 경우 신생아중환자실을 책임져 온 유일한 신생아 세부전문의가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사직 의사를 밝히며 휴가에 들어간 상태였고, 예수병원은 병상이 가득 차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신생아는 전주에서 30분 이상 소요되는 원광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골든타임을 넘긴 뒤였다.

 

의료계는 이러한 상황이 특정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신생아 의료 체계 전반의 붕괴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한다. 현재 비수도권 상당수 지역에서는 신생아 세부전문의 1~2명이 24시간 365일 고위험 신생아 진료와 당직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으며, 후속 전문인력 부족으로 의료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혼과 출산 연령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고령 산모와 미숙아, 저체중아, 다태아 등 고위험 임신이 증가하는 추세도 의료 부담을 키우고 있다. 고위험 신생아는 출생 직후 수분 안에 전문적인 처치가 이뤄져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지역 내 신생아 집중치료 역량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지방은 전문의와 병상 모두 수도권보다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이러한 의료 현실이 정부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났다.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성 평가에서 최근까지 최고 등급인 1등급을 유지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문의 한 명이 주 90시간 이상 근무하고 연속 당직을 반복하는 등 인력난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 공백 일부를 입원전담 전문의 등으로 대체하자 총 진료 인원은 변함이 없음에도 ‘전문의 1인당 환자 수’와 같은 지표가 개선되는 ‘착시’가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병원에 마련된 신생아실에서 신생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입원전담 전문의들은 주간 인력이기 때문에 과거 전공의가 맡던 야간·주말 진료 공백은 지표에 반영되지 않아 현장과 간극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현행 평가가 의료 시설과 인력 규모 등 정량 지표 중심으로 이뤄져 의료진의 업무 강도와 당직 체계, 인력 지속 가능성 등 실제 진료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신생아 의료는 응급의료와 마찬가지로 공공성이 매우 높은 분야인 만큼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신생아 세부전문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력 양성과 근무 지원, 권역별 신생아중환자실 전문의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응급 이송 체계 개선과 병상 실시간 공유 시스템 구축 확대,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진료체계 강화 등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다. 의료진의 과도한 당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인력 지원과 지방 근무 유인책 마련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신생아 사망 사건은 의료진 개인의 책임 여부를 넘어 지방 의료 기반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경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의료계 관계자는 “신생아 치료는 몇 분의 지연이 생명을 좌우하는 만큼 신속한 의료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전문인력 확보에 국가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유사한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