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현장에 사람 사라지고 화환 줄세우기 대결 일방적 주장만 서로 반복… 얼굴 맞댄 설득·소통 필요
한국인이 세계인과 비교해 유독 적게 소비하는 품목이 있다. 책과 꽃이다. 한국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 내내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평균 종이책 구매량 또한 연간 한 권에 불과하다. 꽃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연간 꽃 소비액은 1만3000원 수준.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경조사 화환과 실내 인테리어용 꽃이다. 책으로 치면 수험서와 잡지, 만화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한국인은 서로에게 꽃다발이나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는 일이 거의 없는 셈이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솔직히 나부터 할 말이 없다. 꽃이라는 걸 사기 시작한 건 매년 생일 선물을 못 고르는 남편을 보다가 지친 아내가 “그냥 꽃 한 다발 사 와”라고 말해준 덕분이었다. 그 덕분에 최근 10년간은 1년에 두세 번은 꽃을 산다. 아내 생일에 한 번 그리고 가끔 퇴근길 지하철에서 할인 판매하는 꽃다발을 슬그머니 집어 들게 됐다. 책도 읽는 사람이 더 읽듯, 꽃도 사는 사람이 더 산다.
독서의 달처럼 ‘전 국민 꽃 선물하기의 달’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시기에 갑자기 꽃 시장이 활황인 분야가 생겼다. ‘시위화환’ 시장이다. 최근 배재고 정문 앞에 배재고 야구부를 규탄하는 화환과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화환들이 세를 겨루듯 들어섰다고 한다. 정작 꽃을 산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고 화환만 교문 앞을 장식하는데 내가 보기엔 ‘시위의 이커머스화’다.
근조화환이 시위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충북 청원군청 앞이라고 한다. 호수공원 개발에 반대하던 주민들이 시작했다. 이후 코로나19 때 사람이 모일 수 없게 되자 화환이 하나둘 시위 현장에 사람 대신 등장했다. ‘근조화환 시위’라는 말도 2021년부터 검색되기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2024년 폭발했다.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와 걸 그룹 뉴진스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으면서다. 뉴진스 팬들이 하이브 사옥 앞에 보낸 죽 늘어선 화환은 클릭 한 번으로 벌이는 시위였다. 이후 동덕여대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복귀 반대 시위 등으로 화환 시위가 이어졌다. 절정은 그해 겨울 탄핵 정국이었다. 한남동 관저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에는 서로 주장을 달리하는 근조화환이 수천 개씩 배달됐다. 시위화환 상품은 이제 근조화환, 축하화환과 함께 이젠 당당히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고 있다.
화환을 보내는 건 좋게 보자면 시위에 참석하지는 못해도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의 연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위마저 소셜미디어처럼 소비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위는 원래 참여하지 않는 다른 시민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왜 길을 막고 불편하게 하느냐는 불특정 다수의 항의에 대해 시위대는 우리의 주장은 이런 것이라 알려가면서 사회가 함께 공동의 기준을 만든다. 핵심은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대면 만남이다. 하지만 근조화환 시위에는 얼굴도, 대화도 없다. 그냥 내 얘기만 리본에 담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그 일방적 주장을 다시 인스타그램에 일방적으로 재확산한다.
얼굴을 안 볼 때 인간은 냉혹해진다. 처음 총을 들고 적군을 바라본 병사는 방아쇠를 쉽게 당기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볼 일이 없는 폭격기 승무원이 폭탄 투하를 거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얼굴을 보지 않는 화환 시위의 리본 위 문구가 점점 더 극단적이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계절과 상태에 따라 장미 한 송이 가격은 2000원에서 5000원 한다. 시위용 화환 가격은 5만원 전후다. 시위화환 한 번 보낼 돈이면 10명에서 많게는 25명까지 직접 얼굴을 보고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넬 수 있다. 그게 훨씬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