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정조 리더십이 던진 교훈

李, 꼼꼼한 국정 운영… 참모들은 대통령만 바라본다

“왕은 성인(聖人)이셨다.”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사망한 뒤인 1800년 음력 10월. 이조참판 윤행임은 묘지문에서 그를 이렇게 평했다. 사망한 왕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왕조의 관례이나 ‘성인’이라는 표현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도형 정치부 차장대우

그럴 만도 하다. 정조는 재위 기간 24년 내내 부지런했다.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다. 즉위하자마자 외척들을 내쫓고 왕실 재산의 제도적 통제를 강화했다. 국가 기강을 바로잡았고 지방 수령 관리·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꾸준한 관심과 집요한 실행력이 필요한 조치였다. 정조는 유능하면서도 성실한 행정가였다. 그의 치세에서 조선은 몇 단계 발전했다. ‘성인’ 속엔 존경이 담겨 있다.



정치가로서 정조는 낙제점이다. 그는 자신만 가능한 정치를 했다. 정조는 학문 수준이 높았고 숨기지 않았다. 조선에서 학문이 뛰어난 군주는 권위를 인정받았다. 신하들은 왕의 학문에 감탄했다. 정조는 신하들을 압도했다.

조선에서 ‘언론’의 역할을 한 건 ‘삼사’라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관리들이다. 정조는 이들의 발언 수위나 태도를 문제 삼아 활동을 제약하곤 했다. 정국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가기 위해 노론 벽파 수장 심환지와 비밀리에 주고받은 편지에도 정조의 ‘통제 지향적’ 성향은 그대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눈에 차지 않으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당대 조선의 비루한 현실 속에서 ‘영웅’ 정조가 나라를 이끄는 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후였다. 위대한 개인이 후계를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면 모순은 극대화된다. 정조 사후 조선왕조가 ‘세도정치’로 접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심을 잡던 사람이 사라지자 남는 건 체제 붕괴였다. 훌륭한 군주 정조가 정치가로서는 비판받는 이유다.

정조의 사례에서 역사가 가르치는 것은 리더가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다. 6·3 지방선거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고는 있으나 50%대의 강고한 지지율이다. 1년간 이 대통령이 보여준 여러 실적이 강고한 지지율 근원이다. ‘실적’의 이면에는 꼼꼼한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년여간 이 대통령은 600여건이 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던졌다. 국정 성과 홍보는 물론, 언론 보도에 대한 본인의 생각,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대한 평가들이 망라됐다.

국무회의는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이 대통령은 현안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을 던졌다. 관료들의 답변도 공개됐고, 답변 수위에 따라 질타와 주목이 오갔다. 대통령의 지시와 생각이 여과 없이 대중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 보인다.

나쁜 방식은 아니다. 국민주권시대에서 정보 공개는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만’ 남는다는 사실에 있다. 대통령의 세세한 지침은 결국 ‘윗선 바라보기’로 이어진다.

모두가 대통령만 바라보면 결정은 늦어진다. 늦어지는 공기업 인사가 증명한다. 때로 채우는 것보다 비워야 한다. 집권 2년차. 전력질주보다는 숨 고르기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조에서 배우는 역사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