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저강도 열전 사이 오락가락 장기화' 가능성 전략 부재로 전면전도, 협상 성과 기대도 어려워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판 탓에 이란과의 전쟁과 대화 사이에서 마뜩잖은 선택지들을 놓고 고민하는 난처한 처지가 됐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CNN 방송, 일간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28일 이란을 상대로 개시한 '장대한 분노 작전' 이후 군사적 압박으로 이란의 핵심 요구를 꺾지 못한 채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초에 이란과 휴전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달 중순에는 이란과의 휴전 양해각서(MOU)에도 서명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오판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의도와 미국이 가진 지렛대에 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결과 지금처럼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휴전 MOU 서명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현 이란 정권 지도부에 관해 유화적 의견을 밝히면서 향후 평화 협상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낙관했지만 현 상황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은 MOU 서명 전날인 지난달 16일 이란 지도자들이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 "상대하기 좋은 사람들"이라며 "급진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달 8일에는 "그들은 매일 합의를 위반한다. 거짓말하고 속인다"며 강경한 비난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합의를 맺고 싶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다"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CNN은 트럼프의 이런 오락가락식 발언을 두고 "어쩌면 이는 반복돼 온 같은 일이고, 그저 트럼프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뿐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MOU 체결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의 요구에 불응하면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자주 위협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합의를 원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했고, 3월 31일에는 테헤란이 "합의를 구걸하고 있다"고까지 말해가며 휴전 합의 성사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NYT는 트럼프가 '이란 정권이 혁명 이념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급히 MOU를 체결했지만, 휴전이 흔들리면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핵 프로그램의 운명, 이란의 미사일 전력, 주변 지역 무장 조직 지원 등 핵심 쟁점은 거의 다뤄지지도 않은 상태다.
휴전 유지조차 불확실해짐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군사 작전 재개, 항구 봉쇄, 장기 대치, 협상이라는 선택지 가운데 어느 쪽도 쉽게 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전투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위협했으나 전면전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도 말했다.
NYT는 트럼프가 이란 항구 재봉쇄를 택할 수도 있겠으나 미국 해군 전력을 계속 배치해야 해 부담스럽다고 지적했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 즉 페르시아만에서 산발적 충돌과 협상이 반복되는 장기 대치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페르시아만에서는 종종 충돌이 일어나고, 정기적으로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열리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은 정상이던 때보다 훨씬 낮은 상태가 계속되게 된다.
NYT에 따르면 리처드 폰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최고경영자(CEO)는 "문제는 버티기, 확전, 합의라는 모든 선택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폰테인은 "가장 가능성이 큰 결과는 낮은 수준의 맞대응 공격이 계속되고, 중재자들의 필사적 외교 뒤 새롭고 취약한 휴전이 등장한 다음, 아마 또 한 차례 공습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냉전과 낮은 수준의 열전 사이를 오가는 긴 진동"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확전'은 국내 정치적 부담과 군비 부담이 크다. '봉쇄'는 장기적 군사 개입을 요구하며, '현상 유지'는 저강도 충돌의 상시화를 뜻한다.
결국 '협상'이 당분간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더라도 가장 현실적 출구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BBC는 제러미 보언 국제부장의 분석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으나 이는 오히려 협상 외에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이란을 타격해 큰 피해를 줄 능력이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포함한 이란의 핵심 요구를 포기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BBC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정권 붕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점도 지적했다.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 절차는 카타르와 파키스탄 등 중재국들을 통해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당분간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중재국 소식통은 BBC에 최근 상황이 "분명한 후퇴"라며, 협상 분위기가 "매우 긴장돼 있다"고 전했다.
BBC는 "양측은 합의가 체결되더라도 상대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제로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