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수지구청 앞 백설교 너머로 예진산이라는 이름의 야트막한 산(해발 135.8m)이 있다. 이 산자락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대단지 터는 본래 임진왜란의 격전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예진산(芮津山)이라는 지명에 대해서 “옛날 진터가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옛진산이라고 하다가 예진산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예진산 옆으로 신봉천과 성복천이 합류한 풍덕천이 탄천과 합류해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자연환경을 고려해서 “‘물가 예(芮)’와 ‘나루 진(津)’을 빌려 ‘물가 나루터’를 한자로 예진산(芮津山)으로 표기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모두 믿기 어렵다.
한양과 부산을 잇는 요충지인 이곳 예진산은 왜군이 한양에 진입하기 위한 보루를 세운 곳이어서 임진산(壬辰山/壬陳山) 혹은 이진봉 등으로 호칭되어왔는데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일본 민족을 ‘예’라고 불러왔음을 상기하면 ‘예진산’이라는 지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1447)에 이미 ‘왜’를 ‘예’라고 기록하고 있고 멀리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시대 향가에도 일본을 ‘왜’가 아니라 ‘예’의 이전형이라 할 수 있는 ‘여리’로 읽어야 하는 사례가 보이기도 한다. 이 산이 왜구들의 주둔지였다는 기록도 있다. ‘동국여지도(東國輿地誌)’ 용인편(龍仁縣)에는 “현의 서쪽 10리, 큰길 위 산기슭은 임진년 왜구가 잇달아 진을 치고 있던 곳이다(在縣西十里大路上山麓萬曆壬辰倭寇連營屯據處)”라고 되어 있어서 이곳이 임진란 때 왜군의 주둔지였음을 직접 증언하고 있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