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며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편에 섰다가 그만 국운이 쇠락했다. 독일과 나란히 패전국의 짐을 짊어진 튀르키예는 유럽 쪽 영토를 거의 다 잃었다. 해체된 옛 제국을 대신해 1923년에는 공화국이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영국, 미국 등 연합국들은 튀르키예를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전선으로 끌어들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나 1차대전 시기 서방과 대립했던 튀르키예는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대세를 관망하며 중립 노선을 고수하다가 독일 패배가 확실해진 뒤에야 연합국에 가담했다.
2차대전 종전 후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이 튀르키예 안보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했다. 지금은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에 조지아,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들이 있지만 소련 해체 이전에는 달랐다. 조지아·아르메니아 둘 다 옛 소련의 일부로 냉전 시기만 해도 튀르키예와 소련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튀르키예는 이웃 나라 그리스와 더불어 공산주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영국은 1947년 “국력의 한계”를 들어 지원 포기를 선언했다. 영국이 했던 역할은 서방의 신흥 패권국 미국에게 넘어갔다. 역사가들은 1947년 3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그리스·튀르키예 원조 방침을 밝히며 ‘트루먼 선언’을 발표한 것을 동서 냉점의 시발점으로 본다.
나날이 커지는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고자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설립했다. 창립 당시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었다.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에 속한데다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키예는 기독교 문화가 대세인 서방의 일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나토에 속한 유럽 국가들 다수의 견해였다. 소련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하는 튀르키예 입장에서 나토 가입은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였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지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한국 편에서 참전했다. 튀르키예는 연인원 2만1000명 이상의 장병을 보내 한국을 적극 도왔다. 숫자로 따져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은 4위의 병력 규모다. 이 가운데 1000명 이상이 장렬히 전사했다. 그 때문인지 튀르키예는 1952년 가까스로 나토 회원국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2026년도 나토 정상회의가 지난 7, 8일 이틀 일정으로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렸다. 나토 맹주에 해당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향해 “훌륭한 동맹”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미국·이란 전쟁 당시 다른 나토 회원국들과 달리 튀르키예는 미국을 적극 지원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튀르키예 정부의 인권 탄압 의혹을 들어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의 튀르키예 판매에 반대해 온 미국 민주당 등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의 F-35 구입을 승인할 뜻까지 내비쳤다. F-35를 갖는 것은 오랫동안 에르도안 그리고 튀르키예 정부의 숙원이었다. 동맹을 다루는 트럼프 특유의 스타일이 이보다 더 잘 드러난 사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