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자백 기록을 고의로 누락했다가 검찰에 적발돼 영장이 기각되는 망신을 당했다. 검찰은 수사권 남용에 대한 공식 시정요구도 발동했다.
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부장 최근영)는 보이스피싱 출금책 A씨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토하던 중 피의자의 범행 자백 조서가 누락된 사실을 확인하고 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경찰서 조사 당시 “공범을 전혀 모른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는 변호인과 함께 해당 경찰서에 다시 출석해 “앞선 조사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사실은 공범의 지시를 받아 출금책으로 일했다”고 구체적인 범행을 자백했다. 피의자가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달성경찰서는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이 같은 ‘번복 자백 조서’를 통째로 빼놓았다. 대신 초기 조사 당시의 허위 진술만을 앞세워 “거짓말을 일삼아 증거 인멸의 우려가 높다”는 점만 강조해 영장을 신청했다. 수사 성과를 위해 피의자의 방어권과 직결된 유리한 증거를 선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경찰은 심지어 다른 공범을 조사할 때 이미 A씨의 자백 진술을 근거로 범행을 추궁했던 것으로 드러나 자백 사실을 인지하고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의 이같은 '꼼수 수사'는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전 피의자를 직접 면담하는 과정에서 들통났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경찰의 선별적 증거 선택 행태를 수사권 남용으로 규정하고 영장 기각과 함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경찰 측은 “공람 자료를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달성경찰서는 앞으로 영장 신청 시 필수 서류 누락을 방지하는 ‘영장 체크리스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시정조치결과통보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찰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국민 인권 보호와 부당한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라며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기고 불리한 조서만 짜깁기하는 불량 수사 관행을 철저히 단절시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