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로 파파 수석 와인메이커 방한
아멜리아 에어하트 도전 정신 담아
30년 만에 독립 와이너리로 새출발
아멜리아 칠레 최고 샤르도네 등극
칠레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비냐 콘차 이 토로(Viña Concha y Toro). 테크니컬 디렉터이자 수석 와인메이커인 마르셀로 파파(Marcelo Papa)는 와이너리의 양조 철학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부터 칠레 화이트 와인의 정점으로 꼽히는 프리미엄 라인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콘차 이 토로의 대표작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랍니다. 비냐 콘차 이 토로를 상징하는 플래그십 돈 멜초(Don Melchor)처럼 최근 독립한 럭셔리 컬렉션 비냐 아멜리아(Viña Amelia)가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또 다른 럭셔리 컬렉션 ‘더 마스터(The Master)’ 역시 그의 손에서 빚어집니다. 파파는 어떻게 이처럼 뛰어난 와인들을 만들어 콘차 이 토로의 명성을 이끌었을까요. 한국을 찾은 파파를 만나 험하고도 매력적인 와인 메이킹의 오묘한 세상을 따라갑니다.
◆할아버지의 와인, 아버지의 식탁에서 시작된 길
파파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습니다. 남부 칠레의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던 할아버지와 매일 저녁 식탁에서 와인을 즐기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하며 자랐습니다. 대학에서는 농학을 전공하며 세부 전공으로 양조학을 선택했고, 졸업을 앞둔 22세에 칠레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 쿠시뇨 마쿨(Cousiño Macul)에서 인턴십을 마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이후 비네도스 에밀리아나(Viñedos Emiliana)를 거쳐 미국의 대형 와인 그룹 캔달 잭슨(Kendall-Jackson)에서 약 4년간 근무합니다. 이 시기 캘리포니아와 칠레를 오가며 매년 두 차례의 수확을 경험했는데, 이런 경험은 훗날 그가 칠레 와인을 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1998년 파파는 비냐 콘차 이 토로에 합류, 처음으로 브랜드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입사 직후 그가 맡은 것은 다름 아닌 콘차 이 토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라인, 까시예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칠레 와인 중 하나인 이 라인의 품질을 끌어올리고 대중화를 이끈 것이 바로 그였습니다. 1999년부터는 프리미엄 라인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Marqués de Casa Concha)의 양조까지 추가로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테루아 중심의 세심한 관리를 통해 이 라인을 칠레에서 가장 신뢰받는 프리미엄 와인 중 하나로 성장시켰습니다.
파파는 2004년 칠레 와인 가이드 라 까브(La Cav)가 선정한 ‘올해의 와인메이커’를 시작으로, 2019년 세계적인 마스터 오브 와인(MW) 팀 앳킨(Tim Atkin)의 ‘칠레 스페셜 리포트(Chile Special Report)’에서 ‘올해의 와인메이커’로 선정됩니다. 또 2024년 남미 최고의 와인 가이드 매체 데스코르차도스(Descorchados)가 선정한 ‘올해의 와인메이커’ 타이틀까지 거머쥡니다. 여기에 더 드링크 비즈니스(The Drinks Business)가 선정한 ‘세계 100대 와인메이커(The Master Winemaker 100)’에도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 세계가 인정하는 와인메이커로 자리매김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땅, 리마리 밸리
파파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 남단과 인접한 척박한 테루아, 리마리 밸리(Limarí Valley)를 향한 그의 고집스러운 믿음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 극한의 지역에 주목한 그는 2007년 리마리 밸리의 퀘브라다 세카(Quebrada Seca) 포도밭을 인수해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심었습니다. 그 결과 석회질 토양과 서늘한 바닷바람이라는 리마리 밸리의 테루아는 칠레 화이트 와인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신선함과 미네랄리티를 이끌어냅니다. 이 믿음은 2017년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습니다. 1996년 첫 빈티지를 선보인 콘차 이 토로의 아이코닉 화이트 와인 아멜리아(Amelia)의 포도 공급을 기존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에서 퀘브라다 세카로 바꿉니다.
당시로선 과감한 도전이던 이 결정으로 아멜리아의 품질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특히 대량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오직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단 두 품종에만 집중하는 하이엔드 부티크 와인으로 거듭납니다. 덕분에 아멜리아는 비냐 돈 멜초(Viña Don Melchor)처럼 지난 4월 콘차 이 토로 그룹 내 독자적인 자회사 와이너리 ‘비냐 아멜리아(Viña Amelia)’로 공식 출범합니다. 비냐 아멜리아의 독립은 전 세계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수요 확대에 발맞춰 비냐 돈 멜초처럼 콘차 이 토로 그룹이 아멜리아를 글로벌 화이트 와인의 아이콘으로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행보입니다. 아멜리아는 대서양을 최초로 단독 횡단한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의 도전 정신에서 따왔습니다.
◆퀘브라다 세카 떼루아
비냐 아멜리아의 무대인 퀘브라다 세카(Quebrada Seca) 포도밭은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아타카마 사막의 관문에 자리합니다. 태평양과는 불과 23km 거리여서 바다의 영향을 직접 받습니다. 이 지역의 서늘한 기후를 만드는 핵심 요인은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Humboldt Current)입니다. 폭 약 400km, 깊이 약 50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해류는 칠레 해안을 따라 흐르며 수온을 약 15℃까지 떨어뜨립니다. 남반구 특성상 서에서 동으로 부는 바람이 이 차가운 바다 위를 지나 육지로 들어오면서, 리마리 지역 전체가 서늘한 기후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더해 아타카마 사막과 태평양이 만나는 칠레 북부 해안가에서 발생하는 짙은 바다안개와 낮은 구름층 카만차카(Camanchaca)가 강한 햇빛을 걸러줍니다. 파파는 “이 지역은 낮은 온도와 강하지 않은 일조량, 두 가지 중요한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파파에 따르면 좋은 와인을 만드는 세 가지 요소는 기후, 토양, 사람의 기술이며 특히 퀘브라다 세카가 석회암층 위를 붉은 퇴적 점토가 덮고 있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퀘브라다 세카는 하천이 흐르면서 만든 드라이 크릭(Dry Creek)과 반두리아스 크릭(Bandurrias Creek) 사이에 있습니다. 두 하천은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의 흙과 상류의 퇴적물을 실어 나르면서, 포도밭에 철 산화물이 풍부한 붉은 점토 성분을 듬뿍 쌓았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는 백악질(calcareous) 기반 위에 형성된 철 산화물이 풍부한 붉은 점토 토양에서 나온다. 프랑스 부르고뉴나 호주 쿠나와라(Coonawarra)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특징”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점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선함과 미네랄리티를 위해서는 칼슘 성분이 필요합니다. 리마리 밸리는 과거 해저 지형이었던 만큼 석회질 토양이 특히 풍부합니다. 파파는 “점토는 와인에 구조감을 만들고, 칼슘 성분은 신선함과 미네랄리티, 산도를 제공한다”고 정리합니다. 실제로 아멜리아 와인을 만드는 65ha 규모 포도밭은 크게 점토와 칼슘이 균형을 이루는 ‘퀘브라다 세카’ 토양과, 석회질 성분의 영향이 더 강한 ‘산타 크리스티나(Santa Cristina)’ 토양 두 가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포도밭은 아타카마 사막과 가까운 극한의 건조 환경에 놓여, 계절별 생육량 조절과 정확한 관개 관리가 특히 중요합니다. 18개 블록 중 샤르도네가 15개, 피노 누아가 3개 블록이며 특히 철 산화물이 풍부한 붉은 점토와 수백만 년 전 태평양에서 유래한 흰색 칼슘 성분이 함께 발견되는 9번과 11A 블록이 가장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준다고 파파는 소개합니다. 아멜리아와 더 마스터는 아영FBC에서 수입합니다.
◆칠레 최고의 샤르도네로 등극
아멜리아는 2024년 와인 스펙테이터 등 주요 매체로부터 칠레 최고의 샤르도네로 선정됩니다. 레몬 제스트, 청사과, 배 등 흰 과실류의 프레시한 향이 주를 이루고, 오크 숙성에서 오는 은은한 헤이즐넛과 구운 플린트 향이 복합미를 더합니다. 입안에서는 선명하고 우아한 산도와 함께 태평양 바닷바람과 토양에서 기인한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길고 정교한 피니시를 완성합니다. 생선과 조개, 크리미한 치즈와 궁합이 좋습니다.
100% 손수확한 포도를 송이째 압착한 뒤 효소나 첨가물 없이 자연스럽게 침전시켜 만듭니다. 발효는 부르고뉴산 오크 배럴에서 진행되며, 발효 후 약 두 달이 지나면 소량의 황을 첨가해 젖산(말로락틱) 발효를 막습니다. 파파는 “이 지역은 이미 충분한 산도와 균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젖산발효로 부드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신선함을 유지한다”고 설명합니다. 아멜리아는 여러모로 부르고뉴 스타일과 많이 닮았습니다. 파파도 가장 좋아하는 부르고뉴 스타일로 퓔리니 몽라셰(Puligny-Montrachet)를 꼽았습니다. 그는 “뫼르소(Meursault)는 힘이 있고 코르통(Corton)은 풍부하지만, 퓔리니는 미네랄리티와 신선함, 우아함을 함께 갖췄다. 그 점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콘차이토로 140년 결정체, ‘더 마스터’
카베르네 소비뇽을 베이스로 카베르네 프랑을 소량 블렌딩합니다. 블랙체리, 카시스, 블랙베리 등 검붉은 과실의 집중도 높은 향에 마이포 밸리 특유의 삼나무와 은은한 스파이스, 타바코, 초콜릿 향이 조화를 이룹니다. 미디엄에서 풀바디의 무게감을 지녔고 쥬시하면서도 벨벳처럼 촘촘하고 정교한 탄닌 구조감이 강점입니다. 오크 풍미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아 과실 본연의 우아함과 긴 여운이 살아 있으며, 붉은 고기류와의 페어링이 좋습니다.
이 와인은 콘차 이 토로 가문의 140년 유산을 담은 와인입니다. 콘차 이 토로 설립자 돈 멜초는 1883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들여와 칠레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 처음 심었습니다. 더 마스터는 콘차 이 토로 역사의 근간이 되는 마이포 알토 지역의 두 핵심 포도밭, ‘피르케(Pirque)’와 ‘푸엔테 알토(Puente Alto)’의 포도만 사용합니다. 피르케는 1883년 와이너리가 최초로 세워진 고향이며, 푸엔테 알토는 세계적인 아이콘 와인들을 탄생시킨 명당입니다.
더 마스터의 레이블은 콘차이토로 와이너리의 이름과 탄생 서사를 신화적으로 풀어낸 한 편의 명화 같은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특히 명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오마주한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레이블을 자세히 보면 조개껍질 위에 서 있는 여신(비너스)과 그녀에게 다가가는 황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창립자 가문의 성이자 와이너리 이름인 콘차이토로(Concha y Toro)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Concha’는 스페인어로 ‘조개껍질’을 뜻하며, 레이블 속 비너스가 딛고 있는 조개로 표현했습니다. ‘Toro’는 스페인어로 ‘황소’를 뜻하며, 왼쪽 아래 여신을 향해 강인하게 서 있는 황소가 보입니다. 여신(비너스)과 괴수(미노타우로스/황소)의 만남은 이 와인의 핵심 콘셉트인 ‘대비되는 요소의 아름다운 조화’를 상징합니다. 여신은 와인의 우아함, 청량함, 부드러운 질감을 의미하며 황소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특유의 강인함, 묵직한 구조감, 단단한 타닌을 뜻합니다. 또 여신과 황소의 만남은 마이포 강을 사이에 두고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포도밭을 섞어 만든 와인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여신처럼 부드러운 풍미를 내는 피르케(Pirque) 포도밭과 황소처럼 강렬한 구조감을 주는 푸엔테 알토(Puente Alto) 포도밭의 만남을 레이블 한 장에 예술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파파는 더 마스터의 무대인 마이포 밸리를 “까베르네 소비뇽 재배를 위한 칠레 최고의 지역 중 하나로 알마비바(Almaviva)와 비녜도 채드윅(Viñedo Chadwick) 같은 콘차 이 토로의 세계적 와인들이 생산된다”고 설명합니다. 안데스산맥 바로 아래 해발 약 700m에 위치한 이 지역은 점토보다 자갈과 모래가 많은 척박한 토양과, 덥지 않으면서도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가 특징입니다. 마이포강은 이 지역을 남북으로 가릅니다. 북쪽 푸엔테 알토의 까베르네 소비뇽은 강력한 구조감과 검은 카시스 향이 특징이며, 남쪽 피르케의 와인은 보다 둥글고 부드러우며 우아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더 마스터는 이 두 지역의 장점, 즉 푸엔테 알토의 힘과 검은 과실 향, 피르케의 부드러운 탄닌과 우아함을 결합해 탄생했습니다. 2023 빈티지는 오너 가문의 일원이자 와인메이커인 이사벨 미타라키스(Isabel Mitterrach)와 함께 블렌딩했습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에 약 14%의 까베르네 프랑을 더해 복합미를 끌어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