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중동 안보 지형의 한 축을 이룬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 지도자의 장례식이 마무리됐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9일(현지시간) 북동부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성지에서 매장식을 열고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시신을 안장했다.
이로써 이달 4일 시작돼 테헤란을 필두로 이란 주요 도시와 이라크 내 시아파 성지를 도는 방식으로 진행된 장례식은 엿새 일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들 추모객은 '피의 보복'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흔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한 적개심을 분출했다.
장례식 초반에는 중국, 러시아 등 반미를 공통 분모로 하는 전략적 제휴국과 다수 우방의 고위 관료들도 참석해 연대를 과시했다.
이란 신정체제가 폭압적 국정 운영 때문에 타격을 받은 정통성을 외부에 있는 공공의 적을 내세워 회복하려고 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이란 현 정권은 경제난과 철권통치 때문에 연초 촉발된 전국적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을 학살한 여파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현장을 지켜본 서방 언론매체에서는 인구 9천만명의 이란이 애도자와 애도 거부자 등 두 집단으로 사실상 분열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CNN방송은 "많은 이란인들이 거대한 구경거리에 분노하고 있다"며 "이들은 하메네이를 압제적 정권과 연계해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날 장례식을 끝내는 매장식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전쟁 첫날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며 은둔 때문에 숨졌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리곤 했다.
국가적 중대 행사이자 자신의 부친의 장례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란 체제의 불안한 권력 승계를 둘러싼 의구심은 다시 한번 자극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최고 지도자는 이란 내 강경파와 온건파를 중재해 온 까닭에 미국과의 전쟁, 종전 협상 국면에서 그 구심점 역할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란 전문가들은 과거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의회, 정부 등으로 분점되는 모자이크형 집단지도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을 주목해왔다.
특히 전쟁과 종전 협상 과정에서 강경파를 대변하는 혁명수비대 등 군부가 득세해 미국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을 뿐만 아니라 합의조차 강경론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뒤따르고 있다.
매파와 협상파의 갈등은 이번 장례식에서 외부에 노출될 정도로 두드러졌다.
미국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지난달 서명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테헤란에서 열린 장례행진 중에 군중의 거센 야유를 받고 폭언을 당했다.
이번 장례식은 MOU에 담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해석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강대강 대치가 무력 충돌로 번진 상황에서 거행됐다.
이란은 자국이 지정하지 않은 경로로 해협을 통항하던 선박들을 공격해 통제권을 재확인하려고 했다.
강경하고 호전적인 이란의 태도에 맞서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연안에서 도발에 연계되는 이란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이는 이란의 또 다른 반격과 미군의 맞대응 등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해 중동정세에 긴장 수위를 현격히 끌어올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장례식의 종착지인 마슈하드와 통하는 철도 교량 2곳까지 폭파해 MOU를 통해 약속된 후속 종전 협상의 개최 여부는 더 불확실해졌다.
<연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