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앙탕트 코르디알 만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서기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다스리던 귀족이 약 1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바다 건너 그레이트브리튼 섬에 상륙했다.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섬 남부의 잉글랜드 지역을 점령하고 국왕에 올라 노르만 왕조를 선포했다. 이른바 ‘정복왕’(Conqueror)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1066∼1087년 재위)다. 그는 잉글랜드 국왕인 동시에 프랑스 국왕의 신하 신분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1066년 이후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사실상 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윌리엄 1세를 비롯한 노르만 왕조 역대 국왕과 그 측근들은 프랑스어가 유창하고 영어는 전혀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려는 기색이 완연한 가운데 프랑스·영국의 협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기이한 동거(同居)가 지속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영국은 물론 프랑스 본토에도 영지(領地)를 갖고 있던 잉글랜드 국왕이 대대손손 프랑스 국왕의 부하 노릇에 만족할 리 만무했다. “신하로서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프랑스 국왕을 향해 잉글랜드 국왕은 “핏줄로 따지면 내게도 프랑스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맞섰다. 결국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백년전쟁을 치렀다. 이 싸움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며 프랑스 안에 있던 잉글랜드 영지는 죄다 사라지고 두 나라는 완전히 분리됐다. 만약 잉글랜드가 이겼다면 프랑스어는 잉글랜드 상류층 사이에 고스란히 살아남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오늘날 영어 대신 프랑스어가 세계 공용어 지위를 차지했을 지도 모른다.

 

‘바이외(Bayeux) 태피스트리’는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11세기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바이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직물 자수품은 1066년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을 길이 70m, 폭 50㎝의 그림에 담았다. 만들어진 곳은 프랑스이지만 영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소재로 삼았다. 여기에 더해 11세기 유럽인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해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인들이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오는 9월부터 약 10개월간 런던 영국박물관에 대여할 것을 약속했다.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이외 태피스트리’. 11세기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바이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직물 자수품은 1066년 노르망디 영주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을 길이 70m, 폭 50㎝의 그림에 담았다. 오는 9월부터 10개월 동안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특별히 전시된다. AP연합뉴스

‘작품이 훼손되면 어떡하나’라는 프랑스 문화재 전문가들의 우려 속에 10일(현지시간)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프랑스를 떠나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이동했다.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고 거의 1000년 만에 처음 성사된 해외 나들이다. 마크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 간 신뢰, 문화 교류 그리고 우정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앙탕트 코르디알(Entente cordiale) 만세”를 외쳤다. 이는 1904년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된 화친 조약을 뜻한다. 앙탕트 코르디알에 기초해 양국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동맹을 맺고 같은 편에서 싸웠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려는 기색이 완연한 가운데 프랑스·영국의 밀착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