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창조물’ 승부차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낮은 페널티킥 성공률이 화제다. 어느 스포츠 데이터 전문 업체가 분석한 결과 조별 리그부터 16강전까지 페널티킥이 골로 이어진 비율이 67.7%에 그쳤다고 한다. 사실상 3명 중 1명은 실축을 했다는 의미다. 1970 멕시코 월드컵 당시 페널티킥 성공률은 100%였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슈팅의 방향과 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골키퍼의 능력이 그만큼 향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공을 차는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초조함과 압박감이 갈수록 더 커지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8일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스위스 대 콜롬비아 경기가 0-0으로 끝난 뒤 두 팀이 승부차기에 돌입한 가운데 스위스 선수가 페널티킥을 하고 있다. 스위스가 4-3으로 이겨 8강에 진출했다. AP뉴시스

과거 페널티킥은 ‘골키퍼에게 참으로 잔인한 규칙’이란 통념이 있었다. 페널티킥으로 골을 허용했을 때 골키퍼에게 “그것도 못 막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곤 했기 때문이다. 실은 골키퍼야말로 페널티킥의 희생양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슈팅을 때리는 쪽도 부담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 명단에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자 골잡이인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이름도 있다. 이집트와의 16강전 도중 페널티킥을 넣지 못한 메시는 경기 후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 방식의 축구 대회에서 두 팀이 비기면 승부차기를 한다. 이는 말 그대로 페널티킥의 연속이다. 짧은 간격으로 상대방 선수 5명의 슛을 잇따라 막아내야 하는 골키퍼에겐 고역이다. 공을 차는 선수들도 죽을 맛이다. 성공은 당연시되는 반면 실축하면 그냥 욕을 먹는 정도를 넘어 ‘역적’ 취급을 당한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도 독일, 네덜란드 등 우승 후보들이 32강전에서 승부차기로 져 탈락하는 비운을 맛봤다. 이름은 승부차기인데 정작 승부차기로 승부가 갈린 시합은 ‘무승부’로 기록되니,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지난 8일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스위스 대 콜롬비아 경기가 0-0으로 끝난 뒤 두 팀이 승부차기에 돌입한 가운데 콜롬비아 선수가 찬 페널티킥이 스위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있다. 스위스가 4-3으로 이겨 8강에 진출했다. AP뉴시스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주최국 프랑스와 만났다. 연장 접전 끝에 0-0으로 비긴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여기서 프랑스가 이겼다. 이탈리아는 199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당시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로 져 결승전 진출이 좌절된 아픔이 있다. 4년 뒤 1994 미국 월드컵 때는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만나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세 대회 연속으로 승부차기의 불운이 이어지자 팬들은 “저주에 걸린 것”이라며 탄식했다. 이탈리아 언론은 승부차기를 ‘악마의 창조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만약 축구에서 승부차기를 대체할 새로운 승부 결정법을 누군가 발명한다면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이 수여하는 ‘피파 평화상’을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