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밤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홈플러스에 20년간 속옷을 납품해 온 인천 서구의 중소 제조업체 비비센스의 김종필 대표는 요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매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홈플러스가 경영 부실로 파산을 목전에 두면서 김 대표 회사도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연매출 26억원 규모의 비비센스는 홈플러스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1월부터 받지 못한 납품대금만 6억원이나 된다. 미리 생산해 둔 홈플러스 전용 재고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15억원까지 불어난다. 김 대표는 “지난해 가을부터 홈플러스의 납품대금 지급이 계속 밀리면서 경영난이 심화했다”고 토로했다.
직원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2월까지 9명이던 직원은 현재 3명만 남았다. 퇴사한 직원들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으며, 회사는 최소 인력만으로 버티고 있다.
홈플러스 의존도가 70%가 넘는 식품류 납품업체 영앤스마트그룹도 미정산 납품대금이 6억8000만원이다. 장윤성 대표는 “다른 유통채널 납품도 알아보고 있지만 홈플러스 물량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중소상공인 150개사를 대상으로 파악한 결과 10곳 중 8곳이 대금 정산 지연(평균 7억7400만원)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와 금융권은 급한 대로 지원책을 내놨다. 신용보증기금의 ‘위기대응 특례보증’에 홈플러스 협력업체를 추가해 최대 3000억원 규모로 운영·지원하고, 신규 자금이 필요한 업체에 최대 5억원의 긴급 운전자금 대출을 제공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장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김 대표는 “특례보증을 받기 위해 최근 신용보증기금 현장 실사도 받았지만, 이미 신보 보증을 통해 받은 대출 4억원에다 홈플러스 의존도가 80%에 달한다는 이유로 추가 지원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고 낙담했다.
신보는 이에 대해 “한정된 보증재원으로, 다수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도 등 최소한의 보증지원 제한요건을 운용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홈플러스 피해기업 확대가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가급적 피해기업이 보증지원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적극적인 업무처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홈플러스의 최종 운명은 20일까지 긴급 운영자금 2000억원을 확보하거나 새 인수자를 찾느냐에 달려 있다. 자금 조달의 열쇠는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쥐고 있다. 하지만 양측은 임금 체불과 대금 미정산으로 생계와 경영난 위협에 시달리는 수만명의 홈플러스 직원과 협력·입점업체 관계자들의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네 탓 공방’만 벌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폐업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