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교에 갔을 때는 말을 완전히 안 했어요.”
2019년 한국에 와 4학년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자신의 모습을 은정(18)이는 이렇게 기억했다. ‘안 했다’보다는 ‘못 했다’가 맞다. 탈북한 엄마가 중국에서 아빠를 만나 은정이를 낳았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엄마를 따라 11살에 한국에 온 은정이는 한국말을 전혀 못 했다.
“한국어를 몰라서 그냥 싫었어요.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12일 세계일보가 북한배경학생 1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응답자 115명, 복수응답)에 ‘말투·문화 차이’(40.9%·47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공부·학업 수준 차이’(38.3%·44명), ‘친구 관계 어려움’(32.2%·37명)이 뒤를 이었다. 설문에 응한 116명 중 84명(72.4%)이 제3국 출생이라는 점에서 ‘말투·문화 차이’란 곧 한국어 장벽을 의미한다. 뒤를 이은 공부·학업 수준, 친구 관계 어려움도 서툰 한국어에서 비롯된 어려움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2년마다 실시하는 남북하나재단의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확인됐다.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를 꼽은 비율이 2020년 23.7%, 2022년 23.6%, 2024년 23.9%로 매번 두 번째로 많은 응답률을 보였다. 2022년과 비교해 2024년에는 ‘선생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응답이 8.7%에서 11.6%로, ‘숙제·과제가 어렵다’는 9.0%에서 11.1%로 늘었다.
한국어가 서툴러 한국 사회 적응을 크게 힘들어 하는 제3국 출생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며 북한배경학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북한배경학생은 북한 출생이 63.8%(1073명), 제3국 출생이 36.2%(608명)로 파악됐다.
2015년 제3국 출생은 50.5%(1249명)를 기록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고, 2020년에는 63.5%(1436명)까지 늘었다. 2024년부터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한국에서 낳은 국내 출생이 조사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전체 2915명) 국내 출생이 1606명(55.1%)으로 가장 많고, 제3국 출생은 1019명(35.0%), 북한 출생은 290명(9.9%)이다.
탈북민과 그 자녀들을 지원·보호하는 근거인 북한이탈주민지원법은 내년으로 제정 30년을 맞지만 제3국 출생 학생에 대한 대책은 부족하다. 2024년 개정으로 교육지원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등록금, 입학·편입학 중심이어서 입국 초기에 필수적인 한국어 기초학습과 교과 언어, 생활 문해력 문제까지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정비되어 있는 외국 출신 이주배경학생에 대한 언어 지원 정책을 제3국 출생 북한배경학생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체성 혼란, 가족 분리와 재결합 등의 문제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혜 한국교육개발원(KEDI) 통일·다문화교육연구실장은 “북한배경학생도 한국어나 문화적응 등 이주배경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구축된 인프라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북한이탈주민 가정의 자녀로서 갖는 특수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