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마트 안경을 활용한 토익 부정행위가 국내 최초로 적발되면서 최근 실시된 중·고등학교 내신시험장에서는 첨단기기를 활용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술 발전과 맞물려 커닝 수법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시대에 따른 부정시험 변천사를 살펴봤다.
◆ AI 기기 하나로 가능해진 커닝
서울 광진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모(18)양은 최근 기말고사를 시작하기 전 교내 안내 방송을 통 휴대전화는 물론 AI 스마트 안경까지 휴대금지 물품으로 안내받았다고 전했다. 박양은 “내신 시험은 전자기기 소지 여부를 따로 조사하지 않고 진동이 울려야 0점 처리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며 “내신 시험이 수능보다 철저히 감시하기 어려운 만큼 AI 스마트 안경 등으로 악용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커닝을 적발하기가 점점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9일 한국토익위원회에 따르면 5월 10일과 31일에 각각 치러진 토익 정기시험장에서 AI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커닝을 저지른 응시자가 1명씩 적발됐다. 특히 지난달 19일 유명 IT 유튜버 ‘테크몽’이 AI 스마트 안경을 쓰고 수능 모의고사를 치른 결과 단 18분 만에 96점을 기록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교육청들은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AI 스마트 안경과 관련된 부정행위 예방 안내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과거 통신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는 커닝 쪽지 등의 형태를 제외하면 주로 외부 조력자가 개입하는 조직적 형태로 이루어졌다. 반면 AI 스마트 안경은 문제 확인부터 답안 풀이와 수신까지 기기 하나로 독자적인 해결이 가능해 범행이 더욱 용이해졌다.
◆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시대 과거시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AI는 물론 전기조차 없던 조선시대에도 ‘반칙’은 존재했다. 가문의 명줄과 영광이 과거 합격 여부에 달려 있었던 만큼 치열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 숙종 재위 시기에는 당파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과거시험이 정파의 세력을 확대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했다.
이 시기 과거시험과 당쟁이 결탁한 대표적인 대형 사건이 바로 1699년(숙종 25년)의 ‘기묘과옥(己卯科獄)’과 1712년(숙종 38년)의 ‘임진과옥(壬辰科獄)’이다. 각각 기묘년과 임진년에 과거시험 부정행위를 계기로 벌어진 대규모 수사·처벌 사건을 뜻한다.
두 사건의 이면에는 노론과 소론의 과열된 대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숙종은 겉으로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을 표방했으나 실제 정국의 주도권은 소론 대신들이 쥐고 있었다. 세력을 더 키우고 싶었던 소론 계열의 시험관들은 과거시험을 기회로 삼았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논저 ‘한국사’에 따르면 기묘과옥 때는 합격한 답안지에 다른 사람의 이름표를 붙이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한 인원이 전체 33명 가운데 15명이나 됐다. 임진과옥 당시에는 익명으로 치러지는 과거시험에 채점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앵(鷪)’자를 적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오늘날 블라인드 평가 방식인 답안지에 특정 표시를 남겨 채점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반대 정파인 노론은 이를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숙종은 노론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연루된 사람들은 합격 취소 후 추방, 군역 등의 처벌을 받았다.
◆ 통신기기 발달과 함께하는 부정행위
과거시험 편법이 정치권력과 맞닿아 있었다면 근현대 시험 부정의 가장 큰 특징은 통신기기의 등장과 이에 발맞춘 조직화다.
2004년 진행된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수험생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커닝을 시도했다. 광주지법과 광주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지역 중·고등학교 동창들로 이루어져 후배들까지 가담하게 된 이들은 실행에 옮기기 위해 크게 세 집단으로 분담해 움직였다. 고득점 수험생들로 구성된 ‘선수’ 집단과 시험점수가 다소 떨어지는 일반 응시자, 이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후배들 ‘도우미’까지 세밀하게 짜여 있었다. 열지 않아도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휴대폰 수십 대를 준비해 ‘선수’가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신호를 외부에서 대기하던 ‘도우미’에게 보내면 이들이 정답을 추려 일반 응시자에게 전했다.
이외에서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조직적 범죄는 다수 확인됐다. 2005년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성적 무효 대상자 현황’에 따르면 휴대전화 등의 전자기기가 보급됐으나 반입이 엄격히 금지되기 전인 2002~2005학년도 수능에서 부정행위로 성적이 무효 처리된 응시자는 총 47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송수신을 이용한 사람은 412명으로 압도적이었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 치러지는 수능의 방어망마저 뚫리면서 교육 당국은 관리 전반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전에는 자율적으로 휴대전화를 끄고 가방에 넣어 앞쪽에 모아두는 식이었다면 이후에는 전자시계를 제외한 모든 전자기기를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해 적발 시 시험 성적 전체를 무효 처리하도록 하고 시험장 복도마다 금속탐지기를 비치했다. 수능 샤프와 OMR(답안지) 카드에 필적확인란이 도입된 것도 이때다. 또한 부정행위자의 수능 응시를 1년간 제한하는 규정도 2006학년도 수능부터 시행됐다. 2017년도 시험부터는 전자시계도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