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경찰 유착과 증거 인멸로 얼룩진 전말

장윤기 ‘성폭행 목적’ 드러나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가 지난 5월 14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는 모습. 사진=뉴스1

2026년 5월 5일 광주 도심에서 발생한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범죄가 아닌 성범죄를 노린 치밀한 계획범죄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현직 경찰 간부인 피의자 아버지가 증거를 인멸하고 초기 수사팀이 부실 수사를 벌인 정황이 포착되어 사법 당국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의 보완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가운데 장윤기는 재판에서 범행 목적을 전면 시인했다.

 

◆ 묻지마 범죄 위장 뒤 숨겨진 범죄의 전말

 

피의자 장윤기(23세)는 지난 5월 5일 오전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대학교 인근 도로에서 귀가하던 17세 고교생 고 이채원 양을 흉기로 살해했다.

 

장윤기는 비명을 듣고 도우러 온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체포 직후 장윤기는 자살을 고민하다 홧김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찔렀다며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의 보완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다. 장윤기는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 직장 동료였던 20대 베트남 여성 A씨의 집에 침입해 13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을 저질렀다.

 

A씨가 탈출해 신고하자 장윤기는 경찰의 경고 문자에도 불구하고 30시간 동안 A씨를 스토킹하며 찾아다녔다.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한 장윤기는 범행 대상을 무고한 이 양으로 변경해 1.2km를 미행했다. 장윤기는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운 뒤 뒷좌석 문을 열어두고 이 양을 목 졸라 제압해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 양이 거세게 저항하자 장윤기는 흉기로 무참히 이 양을 살해했다.

 

◆ 현직 경찰 간부 부친의 증거 인멸과 수사팀 유착 의혹

 

수사 과정에서는 경찰의 심각한 부실 수사와 유착 정황이 드러났다. 초동 수사를 맡았던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은 피의자를 구속하면서 현직 경찰 간부인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아들 원룸의 비밀번호를 넘겼다.

 

비밀번호를 확보한 아버지는 원룸에 들어가 장윤기의 DNA가 묻어있는 핵심 증거물인 리얼돌을 훼손해 폐기했다. 또한 과거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들을 소각했다.

 

수사팀은 장윤기의 차량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부실함을 보였다. 성범죄 목적으로 준비한 케이블타이와 트렁크에 숨겨져 있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차량을 피의자 가족에게 반환했다.

 

심지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회신받은 리얼돌 DNA 감식 보고서마저 실무자 실수라는 이유로 송치 기록에서 누락시켰다.

 

이에 국가수사본부는 유구무언이라며 공식 사과하면서 해당 수사팀 전원을 업무에서 배제한 뒤 팀장을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 결정적 증거 앞에 성범죄 목적 살인 시인한 2차 공판

 

일반 살인죄는 하한이 징역 5년인 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장윤기는 중형을 피하고자 지난 6월 22일 열린 1차 공판까지 성폭행 목적의 범행 동기를 보류하며 사실상 부인해왔다.

 

하지만 1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장윤기는 결국 성범죄 목적 살인을 포함한 공소사실 일체를 인정했다.

 

검찰이 재압수수색을 통해 장윤기 아버지의 집에서 회수한 케이블타이와 뒷문을 열고 납치를 시도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 정치권 공방으로 번진 수사권 문제와 유족의 엄벌 호소

 

이 사건은 정치권의 화두로도 번졌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경찰 수사팀과 피의자 부친의 증거인멸은 검찰의 보완 수사가 없었다면 영영 묻혔을 것이라며 보완수사권이 폐지될 경우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속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담한 슬픔에 빠진 피해자의 유족은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단 한 번도 부모에게 화낸 적 없던 17세 이채원으로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족은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격리를 눈물로 촉구하고 있다.

 

장윤기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27일에 열릴 예정이다.

 

한편 현행 형사소송법과 경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수사관은 피의자와 친족 관계이거나 학연, 지연 등 특수 관계가 있을 때 해당 사건의 수사에서 제척되거나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수사 기밀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외압을 차단하기 위한 독립적 감찰 기구의 상설화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