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방송의 이탈리아 로마 및 바티칸시티 특파원으로 수십년간 일하며 5명의 교황을 취재한 데이비드 윌리 전 BBC 기자가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2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윌리는 최근 생애 대부분을 보낸 이탈리아에서 심부전으로 타계했는데, 정확한 날짜 및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BBC는 “바티칸에서 5명의 교황과 함께하며 동행 취재와 보도를 한 교황청 역사의 권위자”라며 “교황청을 처음 담당하게 된 후배 기자들에게 노하우와 통찰력을 전수한 좋은 선배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윌리는 1932년 12월 영국 잉글랜드 남부 버킹엄셔주(州)에서 태어났다. 윌리의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목공예 거장이었고, 덕분에 그는 어릴 때부터 이탈리어를 배워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 퀸즈 칼리지에서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윌리는 1957년 로이터 통신의 수습기자로 뽑혀 로마에 파견 근무를 가는 것으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윌리는 이탈리아·프랑스·서독(현 독일)·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6개국 대표들이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에 관한 로마 조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EEC는 현 유럽연합(EU)의 전신에 해당한다. 이후 프리랜서 기자로 전환한 윌리는 1960년대 초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알제리에 머물며 독립적인 취재 활동을 했다.
윌리는 1964년 BBC에 입사해 동아프리카 특파원을 맡았다.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중국에서도 특파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972년 이탈리아 및 바티칸시티를 담당하는 특파원으로 발탁돼 로마에 사실상 정착했다.
교황청 출입 기자로서 윌리가 취재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그리고 지금의 레오 14세까지 5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요한 바오로 1세는 1978년 즉위 후 33일 만에 선종(善終)한 반면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 넘게 재위해 역대 교황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 자리를 지키면서 가톨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윌리가 가장 잘 알고 지낸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2013∼2025년 재위)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5년 프란치스코의 전기에 해당하는 저서 ‘프란치스코의 약속’(The Promise of Francis)을 펴냈고, 이듬해인 2016년 이 책을 교황에게 헌정했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교황청을 계속 출입했던 윌리는 2025년 5월 즉위한 레오 14세와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1932년생인 윌리에 비하면 레오 14세는 무려 20세 이상 어려 아들뻘이나 다름없다. 사실 윌리는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보다도 나이가 많다. 그는 2025년 작성한 어느 기사에서 “불현듯 나는 이미 고인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내가 네 살 더 위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고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