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눈물의 여왕' 김지수가 한국 떠나 프라하서 ‘사장’ 된 사연

스포트라이트 뒤 고독을 지나, 그녀가 화려한 연기를 멈추고 낯선 투어객과 마주한 이유

35년간 카메라 앞에서 ‘눈물의 여왕’이라 불리며 쉼 없이 달려온 배우 김지수가 돌연 한국을 떠났다. 제작발표회와 대본 리딩 대신 그녀가 선택한 곳은 체코 프라하의 오래된 공원이다. 최근 그녀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근황을 전하자 대중은 은퇴를 언급하며 그녀의 행보에 의구심을 표했다. 그녀는 타지에서 배우라는 이름표를 잠시 내려놓고 여행사라는 ‘낯선 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릴 적부터 타인의 시선과 캐릭터의 옷을 입어야 했던 그녀에게 프라하의 익명성은 지난 35년간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온전한 자신을 만나는 첫 번째 기회였다. 오랜 연기 인생을 뒤로하고 그녀는 왜 경영이라는 실무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35년의 세월을 카메라 앞에서 증명해 온 배우 김지수의 전성기 시절.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1992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지수는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배우다.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태양은 가득히’ 등 3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안방극장을 장악했던 히트 드라마부터 영화 ‘여자, 정혜’를 통해 입증한 깊이 있는 연기력까지 그녀의 커리어는 화려했다. 특히 특정 캐릭터에 몰입해 서럽게 우는 연기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녀를 대체 불가능한 ‘눈물의 여왕’으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 인생이 빛나는 성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과 2010년 두 차례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 2018년 영화 인터뷰 당시의 만취 논란은 그녀가 쌓아 올린 배우로서의 값어치를 스스로 깎아먹는 치명적인 흑역사가 되었다.

화려한 배역 뒤에 가려져 있던 긴 고독의 터널을 지나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시작한 시간. 김지수 SNS

특히 2000년대 중반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던 동료 배우와의 만남과 이별, 이후 고인이 된 이를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은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결정적 계기였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김지수가 짊어져야 했던 고독의 실체였다. 그녀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2015년부터 붓을 들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유화 작업은 비구상의 형상 속에 복잡한 심경을 녹여내는 탈출구였다. 프라하에서의 투어는 단순히 여행객을 인솔하는 일이 아니라 지난 세월 그림 속에 담았던 고독과 이별을 비로소 대지 위에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일종의 ‘치유 투어’인 셈이다.

배우의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며 붓을 든 한 인간의 담담한 기록. 김지수 SNS

대중은 그녀의 연기력을 인정하면서도 사생활 논란에 대해서는 냉담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작품의 주인공을 맡으며 인기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연이은 논란 속에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프라하에서 마주한 현실은 대본이 아닌 ‘경영’이다. 김지수는 최근 SNS를 통해 “35년 연기 인생을 달려오면서 지금처럼 온전한 쉼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며 프라하에서 직접 여행사를 운영하며 느끼는 변화를 털어놨다. 그녀는 현재 ‘지수 인 프라하’라는 브랜드를 통해 여행자들과 동행하며 프라하와 주변국을 안내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휴식을 위한 도피가 아니라 배우라는 이름표를 떼고 ‘자립하는 인간’으로서 삶을 개척하려는 시도다.

 

김지수는 “작품이 끝나도 다음 캐릭터를 고민하느라 늘 쫓기듯 살았다”며 “프라하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굳은 의지만으로 유지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모든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프라하의 페트르진 공원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그녀는 과거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감정을 직면하고 있다. 물론 여행사 운영은 화려한 연기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다. 경영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실감하곤 하지만, 이 시간을 연기 인생의 종착점이 아닌 삶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필수적인 경험으로 정의했다.

연기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잠시 내려와 대지 위에서 새로운 삶의 감각을 길어 올리고 있는 그녀의 발걸음. 김지수 SNS

은퇴설에 대해 그녀는 “댓글이나 여행사를 통해 만나는 분들이 앞으로 연기는 안 하는 거냐고 많이 물어보신다”며 “그때마다 저 은퇴 안 했다고 말한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프라하에서의 생활은 배우 김지수가 가진 내면의 허기를 달래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에너지를 얻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다. 골수 기증 등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 왔던 그녀의 행보는 이제 웰다잉을 고민하는 성숙한 자세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관성에서 멈추는 대신 스스로 새로운 업을 일궈낸 김지수의 도전은 치열한 일상에 지친 대중에게 삶을 재구성하는 용기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연기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길을 잃었던 배우가 여행이라는 작은 일상 속에서 자기 삶의 길을 찾고 있다. 그녀가 이 낯선 투어에서 길어 올린 인생의 감각은 과연 다음 작품에서 어떤 깊이의 연기로 변주될까. 우리는 지금 한 배우가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솔직한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매일 투어객을 대하는 그녀가 과연 어떠한 삶의 태도를 연기에 녹여낼지 향후 다시 보여줄 복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